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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도시라이브러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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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World City Library</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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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선정의 ‘키우는 엄마, 자라는 엄마’ ]계절 알레르기와 함께 살아가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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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Jun 2010 14:43:35 +0000</pubDate>
		<dc:creator>기 선정</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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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4월 중순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뒷마당 한 켠에서 닭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던 딸이 어느새 슬며시 집 안으로 들어와 마구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딸이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거실로 들어갔다가 벌겋게 충혈된 딸아이의 눈을 보고 질겁했다. 눈의 흰자위가 반 이상 벌겋게 부어올라 마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되어 있었고, 눈이 가렵고 따가웠던 딸아이는 네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휴지에 물을 묻혀 눈을 시원하게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작년 이맘때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아이를 집 안에서 쉬게 하면서 눈을 찬물로 여러 번 닦아 주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style="margin-top: 30px; font-size: 9pt; border: 1px dashed; padding: 10px;">
<p>‘키우는 엄마, 자라는 엄마’의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이 칼럼의 소재는 한국인 남편과 함께 영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자, 이제 만 네 살이 되어가는 에너지 넘치는 개구쟁이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인 엄마이자, 영국에서 미디어교육을 전공한 교육연구자인 필자의 일상생활입니다. 사람마다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는 임신·출산·육아의 경험은 개인에게 모두 소중한 체험이며 추억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비슷하고 다르기도 하며,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하는 한편, 그저 단순한 엄마들의 수다거리에 지나지 않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들려주는 군대 생활에 대한 이야기처럼 지나치게 개인적이고도 감상적으로 풀어내는 경험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겪은 경험은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분명 새로운 무엇에 대한 배움이나 인식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p>
<p>제목이 시사하듯, 필자는 ‘육아’를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육아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이 키우는 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지평이 넓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필자 또한 임신·출산·육아의 경험을 거치면서 유학생 신분으로 살았던 때에는 전혀 접해볼 수 없었던 영국의 일상 생활과 문화, 사회제도 등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칼럼의 바탕이 되는 소재는 영국에 살고 있는 필자 개인의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육아 체험담이나 육아일기, 혹은 단순히 영국의 사회제도와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넘어서, 현재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육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새롭게 곱씹어 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p></div>
<p style="text-align: right;">2010년 6월 칼럼</p>
<p><strong><span style="color: #ea5d00;">계절 알레르기와 함께 살아가기</span></strong></p>
<p><strong><br />
</strong></p>
<p>4월 중순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뒷마당 한 켠에서 닭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던 딸이 어느새 슬며시 집 안으로 들어와 마구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딸이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거실로 들어갔다가 벌겋게 충혈된 딸아이의 눈을 보고 질겁했다. 눈의 흰자위가 반 이상 벌겋게 부어올라 마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되어 있었고, 눈이 가렵고 따가웠던 딸아이는 네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휴지에 물을 묻혀 눈을 시원하게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작년 이맘때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아이를 집 안에서 쉬게 하면서 눈을 찬물로 여러 번 닦아 주었다.</p>
<p>헤이피버(Hayfever). 영한 사전 상으로는 ‘건초열’이라고 나와 있지만, 영국에서는 이 단어를 일반적인 ‘꽃, 나무, 잔디 등에서 나오는 화분(pollen) 알레르기’(이하 꽃가루 알레르기로 약칭함)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안타깝게도 매일 장시간 바깥 활동을 즐기는 딸아이는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것이다. 작년 봄에도 딸아이는 얼굴, 특히 눈 주위가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피부가 거칠고 건조해지고,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해 잠을 못 이뤄서 응급실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응급실에 근무하고 있던 소아과 의사는 꽃가루 알레르기라는 진단을 내리지 않았고, 단순히 벌겋고 건조해진 피부를 잠시 진정시킬 수 있는 약만 처방해주었기에 우리는 딸아이의 평소 건조한 피부를 탓하며 올 봄을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맞게 되었다.</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6/그림1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800" title="그림1"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6/그림11.jpg" alt="" width="550" height="152" /></a></p>
<p><span style="color: #888888;">[사진 1] 각종 꽃이 만발하는 계절인 봄은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갈대 씨와 각종 꽃씨는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인데, 특히 민들레 홀씨는 아이들이 따서 불기 좋고 바람에 잘 흩날리기 때문에 공기 중에 떠 다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span></p>
<p>주말을 괴롭게 보낸 후 아이를 데리고 동네병원에 갔더니, 담당의사는 딸의 눈을 보며 아주 전형적인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단번에 진단을 내려주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으나 별로 크게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고, 워낙 딸아이의 피부가 건조했었기에 건조한 피부가 환절기에 좀 심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서 피부 보습에만 신경 썼다고 부연 설명을 했더니, 의사는 우리가 작년부터 딸의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을 키워온 것이라며 올해는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내년에는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가 되기 전부터 미리 약을 먹이도록 하라고 조언해주었다.</p>
<p>영국은 세계적으로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현재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a href="file:///C:/Documents%20and%20Settings/%EC%9D%B4%EC%B2%A0%EC%9E%AC/My%20Documents/Downloads/June2010-Hayfever%20(1).doc#_ftn1">[1]</a>. 특히 최근 몇 년간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통 받는 환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인데, 항히스타민제와 비강 분무액(nasal spray)과 같은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 치료제에 대한 처방도 42%나 증가<a href="file:///C:/Documents%20and%20Settings/%EC%9D%B4%EC%B2%A0%EC%9E%AC/My%20Documents/Downloads/June2010-Hayfever%20(1).doc#_ftn2">[2]</a>했으며,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꽃가루 알레르기 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p>
<p>꽃가루 알레르기의 대표적인 증상은 마치 감기 초기 증상과도 같은 심한 재채기와 콧물 및 코막힘, 그리고 눈이 따갑거나 가려워 부어 오르는 것으로 이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 왕립 약학협회(The Royal Pharmaceutical Society of Great Britain)의 최근 조사 결과에 의하면,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의 40%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인해 지나치게 신경이 예민해져서 자주 짜증을 내게 된다고 호소했고, 29%는 일에 대한 집중력 감퇴, 그리고 14%는 읽기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a href="file:///C:/Documents%20and%20Settings/%EC%9D%B4%EC%B2%A0%EC%9E%AC/My%20Documents/Downloads/June2010-Hayfever%20(1).doc#_ftn3">[3]</a>. 특히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표적인 약인 항히스타민제는 일반적으로 졸음을 동반하기 때문에 영국 교육제도상 대학입학 및 졸업 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이 치러지는 꽃 피는 계절인 5월에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학생들은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p>
<p>마당이 생활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영국에서 꽃과 나무와 잔디를 피해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신경을 쓰면 꽃가루가 좀 덜 날리는 정원을 만들 수 있기도 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원을 고안한 사람이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 매년 5월 말에 열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꽃 박람회로 꼽히는 영국 런던 첼시 꽃 박람회에 올해 특히 심해진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를 정원 조성을 달리해서 해결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도 편안히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원이 출품되었다.</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6/그림2.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801 alignleft" title="그림2"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6/그림2.jpg" alt="" width="228" height="172" /></a></p>
<p><span style="color: #888888;">[사진 2] Olivia Kirk가 고안한 헤이피버 환자들을 위한 정원</span><a href="file:///C:/Documents%20and%20Settings/%EC%9D%B4%EC%B2%A0%EC%9E%AC/My%20Documents/Downloads/June2010-Hayfever%20(1).doc#_ftn1"><span style="color: #888888;">[<span style="color: #ff6600;">4</span>]</span></a></p>
<p>여느 현대식 정원과 별 다를 것 없이 보이는 이 정원은 일반적인 영국 집 마당마다 거의 존재하는 잔디가 깔려 있지 않다. 이 정원을 고안한 Olivia Kirk는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정원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바람으로 수분(꽃가루받이, pollination)하는 잔디 같은 꽃이나 나무 종류는 심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신 벌을 비롯한 곤충을 통한 수분을 하는 꽃이나 나무는 이들에게 무해하다. 라벤더, 장미, 아이리스, 함박꽃 등 꽃밭을 예쁘게 하면서도 꽃가루는 날리지 않는 꽃을 골라 심으면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도 봄철에 정원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우리 자신이 창문을 열고 닫듯 조절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는 우리 집 마당에서 핀 꽃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혹은 멀리 이웃 동네에서도 날아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자신의 집 마당에 잔디가 없다고 하더라도 활동 범위에 따라서 영국 곳곳에 있는 공원에 피어있는 꽃과 펼쳐져 있는 잔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6/그림3.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802" title="그림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6/그림3.jpg" alt="" width="550" height="171" /></a></p>
<p><span style="color: #888888;">[사진 3] 아무리 설명하고 말려도 딸아이는 땅에 떨어져 있는 꽃이나 들꽃들을 따는 재미를 버릴 수 없는 탓에 늘 눈 주위와 얼굴이 벌겋고 피부가 거칠고 건조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span></p>
<p>아이가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는 의사의 진단 후 나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바깥 활동하기 좋은 계절에 집 안에만 묶어둬야 하는 것인지 잠시 망설였다. 이런 내 질문에 담당의사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다운 현명하고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었다. 알레르기 증상을 이유로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잔혹한 일이라고 하면서, 이전처럼 계속 야외활동을 하되 대신 처방해준 약을 먹이고 자외선 차단크림을 바르고 모자와 썬글라스를 씌우고 자주 손을 씻겨주는 등 일상 생활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의사의 말은 정말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조금 덜어주는 것이었다. 더욱이 비가 많이 내리는 음습한 날이 대부분인 영국에서 봄이 시작되는 4월부터 가을로 접어드는 10월까지는 바깥 활동을 즐기기에 쾌적한 황금과 같은 시기라는 점에서 의사의 적극적인 태도는 도움이 되었다.</p>
<p>그 후로 나는 담당의사의 진단을 받아 처방된 약을 2주간 먹이는 동안 꽃가루 알레르기가 연례 행사처럼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자 매년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점, 아이의 학교 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아이의 행동반경을 제한할 수도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 그리고 내 주변에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좀더 자연적인 방법으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동종요법(Homeopathy Therapy)을 통한 자연 치료를 시작했다.</p>
<p>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질병에 이끌려 다니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또한 소극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딸아이가 가진 꽃가루 알레르기는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다. 나는 매일 딸아이의 눈 주위 피부가 벌겋고 건조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꿀을 비롯해 각종 보습제를 발라주느라 바쁘지만, 딸아이가 꽃가루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고 알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바깥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p>
<p>——————————————————————————————————————————————————————————————————</p>
<p><span style="color: #d65500;"><span style="color: #ea5d00;">[1] </span><span style="color: #d65500;"><a href="http://www.dailymail.co.uk/health/article-1278477/Hay-fever-sufferers-face-miserable-summers-years.html" target="_blank"><span style="color: #ea5d00;">http://www.dailymail.co.uk/health/article-1278477/Hay-fever-sufferers-face-miserable-summers-years.html</span></a></span></span></p>
<p><span style="color: #d65500;"><span style="color: #ea5d00;">[2] </span><span style="color: #d65500;"><a href="http://www.hayfeverexpert.co.uk/rise-hay-fever-sufferers.html" target="_blank"><span style="color: #ea5d00;">http://www.hayfeverexpert.co.uk/rise-hay-fever-sufferers.html</span></a></span></span></p>
<p><span style="color: #d65500;"><span style="color: #ea5d00;">[3] </span><span style="color: #d65500;"><a href="http://www.medicalnewstoday.com/printerfriendlynews.php?newsid=103903" target="_blank"><span style="color: #ea5d00;">http://www.medicalnewstoday.com/printerfriendlynews.php?newsid=103903</span></a></span></span></p>
<p><span style="color: #d65500;"><span style="color: #ea5d00;">[4] </span><span style="color: #d65500;"><a href="http://news.bbc.co.uk/1/hi/magazine/8701268.stm" target="_blank"><span style="color: #ea5d00;">http://news.bbc.co.uk/1/hi/magazine/8701268.stm</span></a></span></span></p>
<p><span style="color: #000000;"><br />
</span></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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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 미술관 순례]뉴욕 구겐하임 미술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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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Apr 2010 02:05:11 +0000</pubDate>
		<dc:creator>이 주헌</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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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달팽이 모양의 로툰다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의 광산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솔로몬 R. 구겐하임이 1937년에 설립한 현대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특이한 형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것이다. 워낙 파격적이어서 이 건물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얻는 한편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라이트 스스로를 기념하는 기념물일 뿐”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초기의 비판은 건물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미술관으로 쓰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미술가들로부터 특히 많이 나왔다. 개관전에서 로툰다의 원형 벽면에 작품이 설치된 21명의 미술가들이 공간 구조상의 문제점으로 자신들의 작품이 볼썽사납게 설치됐다며 항의 서한을 발송하는 해프닝까지 생겨나기도 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115-키르히너-포병들.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JPG-이주헌.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781  aligncenter" title="JPG-이주헌"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JPG-이주헌.jpg" alt="" width="580" height="148" /></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마르크-노란-암소.jpg"></a></p>
<div style="margin-top: 30px; font-size: 9pt; border: 1px dashed; padding: 10px;"><strong>대중을 위한 미술 평론가 <span style="color: #00a0e0;">이주헌</span>님과 함께 떠나는 세계미술관 기행. 이번 달에는 지난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이어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갑니다.아쉽게도 이번 구겐하임 미술관 소개를 마지막으로 이주헌 선생님과의 세계 미술관 순례글을 마칩니다. 그동안 세계 곳곳의 미술관 및 박물관의 이야기를 친근한 필체로 전해주신 이주헌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strong></div>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달팽이 모양의 로툰다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의 광산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솔로몬 R. 구겐하임이 1937년에 설립한 현대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특이한 형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것이다. 워낙 파격적이어서 이 건물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얻는 한편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라이트 스스로를 기념하는 기념물일 뿐”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size-full wp-image-10775  aligncenter" title="111나 구겐하임 뉴욕"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111나-구겐하임-뉴욕.jpg" alt="" width="500" height="333" /></p>
<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 구겐하임 미술관 로툰다 풍경</span></p>
<p class="바탕글">초기의 비판은 건물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미술관으로 쓰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미술가들로부터 특히 많이 나왔다. 개관전에서 로툰다의 원형 벽면에 작품이 설치된 21명의 미술가들이 공간 구조상의 문제점으로 자신들의 작품이 볼썽사납게 설치됐다며 항의 서한을 발송하는 해프닝까지 생겨나기도 했다.</p>
<p class="바탕글">미술관의 컬렉션은 추상회화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매우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하지만 소장품을 보여주는 상설전보다는 기획전을 더 중시하는데다가, 상설전도 그때그때 특정한 주제 아래 다른 소장품으로 교체하고는 해 이 미술관의 대표작이라 해서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p>
<p class="바탕글">소장품도 소장품이지만, 구겐하임의 성가를 세계적으로 높인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독특한 경영전략이다. 이른바 ‘글로벌 구겐하임’ 전략이 그것인데, 미술관의 만성적인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세계 곳곳에 세워나간다는 게 핵심 아이디어다.</p>
<p class="바탕글">구겐하임 미술관은 현재 뉴욕의 본관 외에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페인 빌바오, 독일 베를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에 분관을 두고 있다. 베네치아 분관(페기 구겐하임 재단)은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 페기 구겐하임이 모은 컬렉션이 모태가 된 것으로, 1976년 페기가 구겐하임 미술관 쪽에 컬렉션의 소유권을 넘기고 1979년 페기의 사망과 함께 건물에 대한 소유권도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분관의 기능을 하게 됐다.</p>
<p class="바탕글">자, 그러면 이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몇 점을 살펴보자. 그 첫 작품은 폴 고갱의 &lt;하에레 마이&gt;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고갱-하에레-마이s.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772  aligncenter" title="고갱-하에레 마이(s)"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고갱-하에레-마이s.jpg" alt="" width="500" height="385" /></a></p>
<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 폴 고갱, 하에레 마이, 1891, 캔버스에 유채, 72.4&#215;91.4cm</span></p>
<p class="바탕글">‘하에레 마이’는 타히티어로 ‘이리 오라’는 말이다. 때 묻지 않은 원시의 풍경을 그려 놓고 화가는 ‘이리 오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문명의 피로와 억압을 피해 자연에 귀의한 자신처럼 관객도 순수가 살아 숨 쉬는 천연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오라고 권하는 것 같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이 ‘순수한 풍경’은 진실을 살짝 가리고 있다. 고갱이 문명을 벗어나 자연을 찾아간 것은 맞지만, 고갱이 타히티에 갔을 때 그가 대면한 것은 천연의 순수가 아니었다. 이 그림이 그려지기 10년 전 타히티가 이미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데서 알 수 있듯 당시의 타히티는 백인 술주정꾼들과 중국인 노동자, 창부 등에 의해 오염된 문명의 침전물을 쌓고 있었다. 고갱은 타히티에 가면 원초와 근원의 본 모습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곳에서 원초와 근원은 이미 제 모습을 잃고 있었다.</p>
<p class="바탕글">그럼에도 고갱은 마음에 품어온 환영을 담아 타히티를 그렸다. 1891년 가을 그가 거주한 마타이에아 주변을 그린 이 풍경은 관객들로 하여금 타히티가 여전히 순수한 처녀처럼 느껴지게 한다. 원색의 초원과 맑게 놀이 지는 하늘, 그리고 먼 곳의 새 소리까지 날라 올 듯한 대기의 묘사가 아름답다. 순수를 향한 그리움이 낳은 순수의 풍경이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쿠프카-색채의-면들-큰-누드.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773  aligncenter" title="쿠프카-색채의 면들 큰 누드"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쿠프카-색채의-면들-큰-누드.jpg" alt="" width="500" height="405" /></a></p>
<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 프란티셰크 쿠프카, 색채의 면들-큰 누드, 1909-10, 캔버스에 유채, 150.2&#215;180.7cm</span></p>
<p class="바탕글">쿠프카의 &lt;색채의 면들-큰 누드&gt;는 오르피즘 회화에 속하는 그림이다. 오르피즘은 시인 아폴리네르가 들로네의 그림에 붙인 말인데, 색색의 면들로 충만한 들로네의 추상화가 음악적인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해서 그렇게 지어 붙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가객 오르페우스가 그 이름의 어원이다. 쿠프카의 그림 또한 들로네의 그림 못지않게 추상성과 음악성이 도드라져 들로네와 함께 오르피즘 화가로 분류된다.</p>
<p class="바탕글">체코 출신인 쿠프카는 신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철학, 종교, 과학이 종합된 신지학은 일종의 지적 신비주의라 할 수 있다.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쿠프카의 이런 지향성이 눈에 보이는 대상 세계를 넘어 초월적인 차원을 꿈꾸게 만들었는데, 특히 당시 새롭게 대두된 방사선 사진이 그의 영감을 더욱 자극했다. 자신의 그림이 초월적인 차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회화의 ‘엑스레이’로 기능하리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
<p class="바탕글">그림의 여인은 쿠프카의 아내 으제니이다. 단순하게 처리된 배경과 함께 주홍, 노랑, 보라, 초록의 색채가 면을 이루어 누드를 구성하고 있다. 선이나 음영이 아니라 이처럼 색면이 대상을 분할하여 구성하고 있으니 왠지 새로운 차원의 엑스레이를 보는 것 같다. 모델의 보이지 않는 내적 형태가 초월적인 감각에 의해 포착된 느낌이다. 어쩌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이성보다 직관이 더 확실한 나침반일지도 모른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115 키르히너--포병들"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115-키르히너-포병들.jpg" alt="" width="500" height="468" /></p>
<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포병들, 1915, 캔버스에 유채, 140&#215;153cm</span></p>
<p class="바탕글"> 키르히너의 &lt;포병들&gt;도 이 미술관이 자랑하는 걸작의 하나다. 키르히너는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가 이끈 다리파 화가들은 거친 표현과 조잡한 선,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로 화면을 ‘폭격’했다. 철학자 니체의 사상에 크게 공감한 이들은 부르주아의 범용함과 소심함, 부패를 증오했으며, 그 옥죄는 울타리를 깨어 부수고 모든 인습으로부터 절대적 자유를 추구했다.</p>
<p class="바탕글">이런 이들의 과격성은 일차대전이 일어나자 이를 부르주아의 속물성과 산업화의 비인간성을 끝장내고 세계를 개조할 기회로 여겨 앞다퉈 참전하는 양태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낭만주의가 배반당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쟁은 그저 하나의 지옥이었다. 특히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다 신경증으로 조기 전역한 키르히너는 그 두려움의 색채를 이 그림을 비롯한 여러 그림에 남겨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할 운명임을 예고했다.</p>
<p class="바탕글">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갑갑하고 폐쇄적인 샤워실이다. 병사들이 몸을 씻고 있고 옷 입은 장교가 이들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다. 시루에 든 콩나물처럼 빽빽이 그려진 병사들은 사육되는 동물처럼 무기력하다. 그들이 죽여야 하는 대상도 그들처럼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에 의해 통제되는 무기력한 개인들이다. 그런 암시가 이 그림에서 이차대전에서 악명을 떨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마르크-노란 암소"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마르크-노란-암소.jpg" alt="" width="500" height="362" /></p>
<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 프란츠 마르크, 노란 암소, 1911, 캔버스에 유채, 104.5&#215;189.2cm</span></p>
<p class="바탕글">프란츠 마르크 역시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이다. 칸딘스키와 함께 청기사파를 이끌었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던 마르크는 인간이 결여한 신성을 동물들이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경건성을 상실한 인간’을 넘어 ‘순결함을 잃지 않은 동물’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그의 이런 동물 집착에는 당시 독일에서 활발하게 일었던 자연 회귀 운동과 나체주의 운동의 영향이 컸다.</p>
<p class="바탕글">이처럼 자연과 순수를 상징하는 존재로 동물을 그리며 마르크는 색채를 통해 자연의 기본적인 원리를 표현하려 했다. 그에게 색은 매우 환기력이 강한 상징이었는데, 이를테면 “상냥하고 상쾌하고 관능적인” 노란색은 여성을 상징하고 “지적이고 영적인” 파란색은 남성을 남성을 상징했다.</p>
<p class="바탕글">색채에 대한 마르크의 이런 정의에 따라 미술사자 마르크 로젠탈은 이 그림의 노란 암소를 1911년에 결혼한 마르크의 부인 마리아 프랑크로 보았다. 더불어 배경의 푸른색 산은 화가 자신의 추상화된 자화상으로 보았다. 견고하고 정연한 남성성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성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음양의 멋진 하모니는 그런 면에서 화가가 두 사람의 결혼을 기리기 위해 그린 결혼 축하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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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동진][가로(街路)]키류우에서 만난 두 사람[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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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9 Apr 2010 00:58:38 +0000</pubDate>
		<dc:creator>강 동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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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소중한 카메라는 가슴에 깊이 묻고 모자 달린 방수잠바와 배낭을 핑계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15분 쯤 걸었나 보다. 골목길 사이로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또 다른 공장이 보였다. 지금은 직물체험관으로 사용하는 ‘유가리’(織物參考館/紫)라 불리는 공장이었다. 안내소가 입장권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 안내는 물론이고 기념품도 팔고 또 ‘키류우물산진흥협회’(桐生市物産振興協會)의 사무실로도 쓰고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톱날지붕이 6연이나 이어진 크림색 공장이 나타났다(1928년에 지은 공장을 그대로 두었다).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사라졌다(700엔이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3-키류우의-공장들은-생활-속에-깊이-들어와-있다유가리-옆의-골목길.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4-6연으로-늘어서-있는-톱날형지붕공장이-매력적이다..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7_133.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71" title="7_13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7_133.jpg" alt="7_133" width="550" height="140" /></a>      </p>
<p><span style="color: #ff6600;"><strong>공장(工場)길</strong></span>      </p>
<p><span style="color: #ff6600;"><strong><span style="color: #008080;">키류우(桐生)에서 만난 두 사람[하]</span></strong></span>      </p>
<div style="margin-top: 30px; font-size: 9pt; border: 1px dashed; padding: 10px;"><strong><span style="color: #0099cc;">강동진</span></strong> <span style="color: #808080;">님은 성균관 대학교에서 건</span><span style="color: #808080;">축학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설계 전공(석사,박사)을 거쳐 현재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문화’, ‘경관’, ‘역사’, ‘환경’ 등을 키워드로 하는 도시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버려지거나 황폐해 가는 역사공간들(산업유산, 근대화유산, 전통역사마을 등)을 재창조하기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2006년 역사공간들의 재창조를 다룬 &lt;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gt;를 펴냈다.</span></div>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소중한 카메라는 가슴에 깊이 묻고 모자 달린 방수잠바와 배낭을 핑계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15분 쯤 걸었나 보다. 골목길 사이로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또 다른 공장이 보였다. 지금은 직물체험관으로 사용하는 ‘유가리’(織物參考館/紫)라 불리는 공장이었다. 안내소가 입장권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 안내는 물론이고 기념품도 팔고 또 ‘키류우물산진흥협회’(桐生市物産振興協會)의 사무실로도 쓰고 있다.<br />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 <img class="aligncenter" title="키류우의 공장들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유가리 옆의 골목길)"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3-키류우의-공장들은-생활-속에-깊이-들어와-있다유가리-옆의-골목길-1024x768.jpg" alt="키류우의 공장들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유가리 옆의 골목길)" width="550" height="384" /> <br />
<span style="color: #888888;">키류우의 공장들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유가리 옆의 골목길)</span>  </p>
<p><span style="color: #888888;"></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14-44 6연으로 늘어서 있는 톱날형지붕공장이 매력적이다."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4-6연으로-늘어서-있는-톱날형지붕공장이-매력적이다..JPG" alt="14-44 6연으로 늘어서 있는 톱날형지붕공장이 매력적이다." width="550" height="413" />  <br />
<span style="color: #888888;">6연으로 늘어서 있는 톱날형지붕공장이 매력적이다.</span>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000000;">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톱날지붕이 6연이나 이어진 크림색 공장이 나타났다(1928년에 지은 공장을 그대로 두었다).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사라졌다(700엔이었다). 비스듬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톱날형지붕공장의 옆모습이 힘이 있고 매력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직물과 염색관련 기계들과 소품들이 줄 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기계와 소품들이 1,200점이나 된다 한다. 1,300년의 키류우 직물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다른 방으로 들어가니 두 사람이 뭔가를 열심히 얘기를 하고 있다. 눈치를 보니 한사람은 나 같은 방문객이고 한사람은 이곳의 해설가였다. 방문객 손에 내가 들고 있는 똑 같은 팸플릿이 있었다. 이 중년부인은 혼자서 키류우의 봄을 즐기고 있었다.  </span>    </p>
<p class="그림캡션">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5-톱날형지붕공장을-개조해서-만든-전시장.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74  aligncenter" title="14-45 톱날형지붕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전시장"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5-톱날형지붕공장을-개조해서-만든-전시장.JPG" alt="14-45 톱날형지붕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전시장" width="550" height="413" /></a>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톱날형지붕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전시장</span>      </p>
<p class="그림캡션">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6-염색실습실에서-염색과정을-설명하고-있다..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75  aligncenter" title="14-46 염색실습실에서 염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6-염색실습실에서-염색과정을-설명하고-있다..JPG" alt="14-46 염색실습실에서 염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width="550" height="413" /></a>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염색실습실에서 염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span>      </p>
<p class="바탕글"> <br />
<span style="color: #000000;">함께 다음 방인 염색전시실이자 실습실로 갔다. 땅에 묻어 놓은 6개의 독들이 흥미로웠다. 실습생들이 제조한 염료를 풀어 천에 물들이는 염색용 독이다. 비오는 평일이니 실습생이 있을 리 없고, 바삐 지나는 사람이니 직접 해볼 수도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방으로 갔다. 이상하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기계음이 들렸다. 방문객을 위해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이 실제로 직물을 짜고 있었다. 진짜 직물공장이었다. 입구에서 보았던 ‘키류우물산진흥협회’라는 현판이 그제야 수긍이 갔다.   </span>   </p>
<p class="그림캡션">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7-지금도-돌아가고-있는-직물공장.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76  aligncenter" title="14-47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직물공장"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7-지금도-돌아가고-있는-직물공장.JPG" alt="14-47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직물공장" width="550" height="413" /></a>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직물공장</span>      </p>
<p class="그림캡션">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사본-14-48-봄비를-근사하게-즐겼던-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1.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8-봄비를-근사하게-즐겼던-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79  aligncenter" title="14-48 봄비를 근사하게 즐겼던 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8-봄비를-근사하게-즐겼던-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JPG" alt="14-48 봄비를 근사하게 즐겼던 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 width="550" height="413" /></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사본-14-48-봄비를-근사하게-즐겼던-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JPG"></a>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봄비를 근사하게 즐겼던 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span>      </p>
<p class="그림캡션">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9-유가리의-공짜-기념품.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80  aligncenter" title="14-49 유가리의 공짜 기념품"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14-49-유가리의-공짜-기념품.JPG" alt="14-49 유가리의 공짜 기념품" width="550" height="413" /></a>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유가리의 공짜 기념품</span>      </p>
<p class="그림캡션"><span style="color: #000000;">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여서 그런지 제법 끈질기다. 쿠와노키광장(くわのき廣場)이라 적힌 마당에서 봄비를 즐기다 보니 처마 밑에 이상한 누런 종이더미를 발견했다. 기념으로 가져가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뭘까? 어렴풋한 기억에 오래 전 대학시절에 포트란과 베이직을 배울 때 사용했던 컴퓨터 천공카드를 닮았다. 가져가도 된다는 걸 보니 어디선가 계속 나오는 모양이다. “아~ 그렇구나” 의문이 꼬리를 물고 풀렸다. 무린칸에서 키타가와선생이 얘기했던 직물기계와 컴퓨터와의 관계, 그리고 계속 돌아가고 있는 직물공장. “직물공장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것인가 보다”. 일단 혼자 스스로 답을 정했다.   </span>   </p>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1725년에 구멍 뚫린 종이로 직조기를 조종하는 방법이 보촌(Basile Bouchon)에 의해 발명되었다. 직물의 패턴에 따라 종이에 구멍을 뚫어 놓고, 종이가 바늘들에 의해 눌리면 구멍이 뚫리지 않은 것들이 앞으로 움직이며 직물을 짰다. 보촌의 직조기는 다른 직조기들에 비해 일련의 바늘만을 사용한 점에서 단순한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직조기들은 감긴 종이 대신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린 천공카드를 긴 벨트에 연결해서 작동시켰다. 1801년에 잭쿼드(Joseph Marie Jacquard, 1752-1834)는 바늘들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카드들의 체인에 따라 동작하는 자동직물직조기를 발명하여 직물산업에 혁명을 불러왔다. (자료: naver.com/seobyong)   </span>   </p>
<p><span style="color: #000000;">키류우에 톱날형공장이 마지막으로 건설된 것은 1969년이다. 이후 23년이 지난 1992년(平成４年) ３월에 키류우시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직물산업에 근거한 ‘근대화유산 거점도시’라는 슬로건을 발표하였다(近代化遺産拠点都市宣言に関する決議案). 이때 시민 의 약 60%가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정비’에 찬성을 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15년이 다시 지났다. 국가시범공장이 있었던 다른 도시들은 모두 잊어버린 직물산업을 키류우는 아직도 고집스레 지키고 있다.   </span>   </p>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이제 키류우는 일본인 모두가 인정하는 ‘직물도시’가 되었다(모두들 키류우를 織の都라 부른다). 그래서 이들은 엄청난 용기를 내고 있다. 일본은 17개 지역의 비단(絹)관련 산업의 역사를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으려 하고 있는데, 집단으로 남아있는 톱날형지붕공장들 덕택에 키류우가 이 일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나는 키류우에 오기 전에는 “별걸 다 억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으려 하네” 하고 코웃음을 쳤었다. 웅장하거나 멋지지는 않지만 키류우에 스며있는 직물산업의 진정성(眞正性)을 체험하고 나니 코웃음 치던 나의 속내가 꽤나 누그러졌다.   </span>   </p>
<p class="바탕글">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키류우의-근대화유산-분포개념.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758  aligncenter" title="키류우의 근대화유산 분포개념"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4/키류우의-근대화유산-분포개념.jpg" alt="" width="550" height="228" /></a>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키류우의 근대화유산 분포 개념 (키타가와선생이 그린 그림이다) </span>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left;">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000000;">*공장길에 이어 다음 편부터 새롭게  언덕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찾아가 볼 곳은 <span style="color: #3366ff;"><strong>나가사키 미나미야마테ㆍ히가시야마테</strong></span>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질 &lt;강동진의 문화(역사)가 된 산업유산 이야기&gt;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span>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left;">       </p>
<p class="그림캡션"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amp;sc.shopNo=0000400000&amp;sc.dispNo=&amp;sc.prdNo=201485215" target="_blank"><img src="http://old.makehope.org/city/salon/images/salon_080530_03.jpg" border="0" alt="" /></a>      </p>
<p></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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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세기를 위한 도시와 도시재생 정책]英계획허가제로 도시개발 소통의 길 열기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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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Mar 2010 22:00:20 +0000</pubDate>
		<dc:creator>양 도식</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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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요즘 한국 사회는 도시공간과 관련한 삶의 질, 도시경쟁력 향상, 낙후된 도심의 도시재생사업, 공공디자인 등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용산 참사는 도시개발과정의 공공성 부족, 민간 위주의 이익 창출, 공공서비스 차원의 도시계획에 대한 인식 부족, 개발과정의 통제 수단과 주민의 실질적 참여 통로의 부족 등 함축된 문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기 위해서는 기존 도시계획체계의 지속적인 현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가 개발계획허가의 최종결정권을 행사하는 영국의 계획허가제(planning permission)가 관심을 끌고 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city.makehope.org/wp-content/uploads/2009/07/salon_09041319101000.jpg"><img class="aligncenter" src="http://city.makehope.org/wp-content/uploads/2009/07/salon_09041319101000.jpg" alt="" width="580" height="140" /></a></p>
<div style="BORDER-RIGHT: 1px dash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1px dashed; MARGIN-TOP: 30px; PADDING-LEFT: 10px; FONT-SIZE: 9pt;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1px dash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1px dashed"><strong><span style="COLOR: #00a0e0">양도식</span></strong>은 런던대학(The Bartlett)에서 건축디자인 석사를 마친후 같은 대학에서 도시설계/계획으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현재 동대학원에서 연구원과 도시설계튜터로 재직중이다. 그리고 런던에 소재한 영국도시연구소 UrbanPlasma 소장으로 있으며 영국의 건축도시환경을 한국형으로 연구/실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div>
<p><strong><span style="color: #ff9900;">英계획허가제로 도시개발 소통의 길 열기를</span></strong></p>
<p>요즘 한국 사회는 도시공간과 관련한 삶의 질, 도시경쟁력 향상, 낙후된 도심의 도시재생사업, 공공디자인 등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용산 참사는 도시개발과정의 공공성 부족, 민간 위주의 이익 창출, 공공서비스 차원의 도시계획에 대한 인식 부족, 개발과정의 통제 수단과 주민의 실질적 참여 통로의 부족 등 함축된 문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기 위해서는 기존 도시계획체계의 지속적인 현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가 개발계획허가의 최종결정권을 행사하는 영국의 계획허가제(planning permission)가 관심을 끌고 있다.</p>
<p>계획허가제는 모든 도시개발의 인허가를 지자체가 작성한 자치구 계획에 의거하여 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영국 도시계획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계획허가제는 공공성 확보, 지자체의 현실을 기초로 하는 현안 반영과 결정, 주민참여, 개발주체 간의 민주적인 협상을 통해 지자체의 공익을 반영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2004년 도시계획체계 개혁을 통해 지자체의 도시계획 권한을 정책적으로 더욱 더 강화하고 있다.</p>
<p>영국의 성공적인 계획허가제의 운영은 세계화와 지방화시대 경쟁력 있고 살 만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한국의 도시계획체계 개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먼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도시계획체계의 구조와 법령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통제와 규제 중심의 기존 도시계획체계에서 벗어나 전략계획중심으로의 재편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도시계획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적 여건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도시계획을 지자체가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p>
<p>이를 통해 지자체의 도시계획 현실을 바탕으로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도시계획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자체가 처한 상황에 맞도록 도시환경을 구체화하는 창의적인 도시계획이 가능하다. 이는 지자체의 분권과 자율적 역량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p>
<p>지자체 차원에서는 자치구의 도시계획 현안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체계적인 자치구 계획의 작성과 실행 역량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시개발과정에서 많은 이권이 개입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자체가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공평한 절차에 따라 반영하여 개발허가를 결정하는 민주적 소양의 함양은 영국 계획허가제 도입의 전제조건이다.</p>
<p>변화하는 21세기 도시환경과 세계화 지방화의 여건 속에서 지자체의 역량을 바탕으로 하는 개발허가제의 도입은 미래지향적인 선택이라 사료된다. 하지만 한국의 지자체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개발의 목적과 공익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계획허가제의 실행 역량을 준비했는가는 아직 회의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계획허가제의 도입은 중앙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가 예상된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계획허가제 도입 검토는 삶의 질을 높이는 21세기 정주(定住)환경을 조성하려는 도시계획체계 개혁의 좋은 기회를 중앙정부에 준다. 동시에 지자체에는 도시계획의 수립 집행 관리역량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도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영국의 계획허가제는 한국 사회의 공간 환경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소양을 한 차원 높이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률적 문화적 차원의 재점검이 필요하다.</p>
<p><strong>- 양도식 영국도시건축연구소 어번플래즈마 소장</strong></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본 글은 동아일보  2010.01.04 에 실린 글입니다. </strong></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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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선정의 ‘키우는 엄마, 자라는 엄마’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 마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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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Mar 2010 04:54:31 +0000</pubDate>
		<dc:creator>기 선정</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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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세계도시 리포트]]></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category><![CDATA[교육]]></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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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육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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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제 만 네 살이 되어가는 딸이 어느 날 오후 마당 한 구석에 피어있는 노란 크로커스(crocus)를 발견하고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영국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수선화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흔히 볼 수 있는 봄꽃이 바로 크로커스다. 이번 겨울엔 이례적으로 눈이 많이 내렸고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쏟아져 음습하고 스산한 겨울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영국의 기후 변화 탓에 올해는 예년에 비해 열흘 정도 봄이 일찍 올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면서도 설마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뒷마당 한 켠에 슬며시 올라온 크로커스를 보면서 벌써 봄을 맞은 듯한 느낌으로 한참 설레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2.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4.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2.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3.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4.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5.jpg"></a><span style="color: #888888;"><strong><span style="color: #ff9900;">기선정의 &#8216;키우는 엄마, 자라는 엄마&#8217; 칼럼을 열며..</span></strong></span></p>
<p style="TEXT-ALIGN: left"> </p>
<div style="BORDER-RIGHT: 1px dash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1px dashed; MARGIN-TOP: 30px; PADDING-LEFT: 10px; FONT-SIZE: 9pt;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1px dash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1px dashed">이번 달부터 ‘키우는 엄마, 자라는 엄마’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시작합니다. 이 칼럼의 소재는 한국인 남편과 함께 영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자, 이제 만 네 살이 되어가는 에너지 넘치는 개구쟁이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인 엄마이자, 영국에서 미디어교육을 전공한 교육연구자인 필자의 일상생활입니다. 사람마다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는 임신·출산·육아의 경험은 개인에게 모두 소중한 체험이며 추억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비슷하고 다르기도 하며,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하는 한편, 그저 단순한 엄마들의 수다거리에 지나지 않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들려주는 군대 생활에 대한 이야기처럼 지나치게 개인적이고도 감상적으로 풀어내는 경험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겪은 경험은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분명 새로운 무엇에 대한 배움이나 인식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br />
제목이 시사하듯, 필자는 ‘육아’를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육아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이 키우는 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지평이 넓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필자 또한 임신·출산·육아의 경험을 거치면서 유학생 신분으로 살았던 때에는 전혀 접해볼 수 없었던 영국의 일상 생활과 문화, 사회제도 등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칼럼의 바탕이 되는 소재는 영국에 살고 있는 필자 개인의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육아 체험담이나 육아일기, 혹은 단순히 영국의 사회제도와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넘어서, 현재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육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새롭게 곱씹어 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를 바랍니다.</div>
<p style="TEXT-ALIGN: right">2010년 3월 칼럼</p>
<p><strong><span style="color: #ff9900;">아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 마당</span></strong></p>
<p>“엄마! 여기도 크로커스가 피었어!”</p>
<p><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720" title="그림1"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1.jpg" alt="그림1" width="500" height="346" /></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사진1] 우리 집 뒷마당 화단에 피어난 크로커스</strong></span></p>
<p>이제 만 네 살이 되어가는 딸이 어느 날 오후 마당 한 구석에 피어있는 노란 크로커스(crocus)를 발견하고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영국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수선화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흔히 볼 수 있는 봄꽃이 바로 크로커스다. 이번 겨울엔 이례적으로 눈이 많이 내렸고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쏟아져 음습하고 스산한 겨울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영국의 기후 변화 탓에 올해는 예년에 비해 열흘 정도 봄이 일찍 다가올 것이라는 뉴스 보도를 접하면서도 설마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뒷마당 한 켠에 슬며시 올라온 크로커스를 보면서 벌써 봄을 맞은 듯한 느낌으로 한참 설레었다. </p>
<p>아이를 기르는 엄마, 그것도 상당히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 엄마의 입장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이곳의 겨울은 무척이나 더디게 간다.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하고 추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이 내렸다면 오히려 마당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며 밖에서 할 일이 많아진다. 그렇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전무하다.</p>
<p>아이들이 밖에서 놀 수 없다는 말은 그만큼 실내에서 그들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하거나 관심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대리 보모’로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텔레비전인데, 아이를 텔레비전 앞에 마냥 앉혀 놓을 수는 없는 일이고, 또 밖에 나가서 놀 수 없을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아이는 TV 시청 외에 할 수 있는 놀이에 대해서 생각하기 이전에 텔레비전만 찾게 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적절한 부모의 간섭과 개입이 필요하다.</p>
<p>집 안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가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는 엄마인 나는 가끔 아이를 통해서 동료 엄마들을 만나거나 또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고 싶기도 하고, 지역 문화시설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아이의 입장이 되어 즐기고 싶은 욕구도 있다. 무엇보다도 일상 공간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작용한다. 그래서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수영장이나 실내 놀이터와 같이 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 연극 공연장, 지역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이야기 교실이나 동요 교실, 다양한 창작 활동교실처럼 정적인 활동을 하는 곳인데, 이들 활동의 문제는 모두 정해진 시간 동안만 아이들의 관심을 잡아둘 뿐이라는 점이다. 또한 지역 도서관이나 지역 아동센터(Sure Start Children’s Centre)<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1">[1]</a>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실내 활동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집 밖의 자연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놀이터이며 무한한 장난감을 무료로 제공하는지 새삼 깨달았는데, 이 점은 집 밖의 자연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비나 극심한 추위로 못하게 되어 실내 활동으로만 하루를 보내야 할 때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p>
<p>결혼 후 5년간 다른 사람들과 집을 같이 나누어 쓰다가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자고 했을 때 나와 남편이 제일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은 쉽게 자연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이웃으로부터의 독립성이었다. 우리는 딸 윤지가 15개월을 갓 넘겼을 때 길고 넓은 뒷마당이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왔는데, 집 건너편으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농장이 보이고, 집을 나오면 몇 미터 가지 않아 산책길로 연결되어 언제든 아이와 안전하게 나가 걸을 수 있는, 아이를 키우기에 더없이 축복 받은 환경에 있는 집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가족이 뒷마당을 포함해 집 밖과 주변 환경 활용도가 높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뒷마당은 단순히 예쁜 꽃이 피고 깨끗한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는 관상용 자연이 아니라 안전하면서도 편리한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가벼운 줄넘기나 맨손체조 같은 운동에서부터 빨래 널기나 차 마시기와 같은 다양한 일상 활동이 일어나는 삶터에 가깝다.</p>
<p>전형적인 영국의 주택에 존재하는 뒷마당은 바로 앞서 말한 ‘집 밖의 가장 가까운 자연’에 해당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집 밖의 자연’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산을 떠올리겠지만,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영국의 지형에서는 우리의 산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은 주택 구성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파트(flat)<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2">[2]</a> 의존도가 낮고, 집 앞과 뒤로 마당이 있는 일반 주택(house)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반 주택은 다시 여러 채가 일렬로 붙어 있는 형태(terraced house), 두 채만 붙어 있는 형태(semi-detached house), 그리고 단독 형태(detached house)로 나뉠 수 있는데, 어떤 형태의 주택이든 상관없이 앞마당과 뒷마당은 존재한다. 물론 주택 밀집 지역의 경우 앞마당은 종종 주차장으로 전용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앞마당에 작게라도 화단을 조성하여 집 앞을 환하게 만들어 놓는다.</p>
<p>우리 가족의 집 바깥 삶터인 뒷마당에는 가족 구성원마다의 독특한 개인 공간인 남편의 야외 체력단련장, 나의 여름 쉼터, 딸의 놀이집이 존재하고, 한쪽 구석에는 닭장, 그리고 우리 가족의 신선한 먹을 거리를 제공해주는 텃밭이 있다. 서울 외곽에서 살면서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가꾸고 다양한 동물들을 취미로 키우시는 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편 탓에 우리가 이사 온 후 제일 먼저 마련한 것이 텃밭이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늘한 여름을 보내야 하는 이곳의 기후 탓에 우리나라 농작물 재배가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깻잎, 얼갈이 배추, 열무, 갓, 오이, 부추 등을 키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작은 텃밭 농사를 3년 째 이어가고 있다.</p>
<p> </p>
<p><img title="그림2"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2.jpg" alt="그림2" width="500" height="343" /></p>
<p><img title="그림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3.jpg" alt="그림3" width="500" height="320" /></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사진2] 우리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텃밭</strong></span></p>
<p>텃밭 농사를 지었던 첫 해에 우리 부부의 일을 방해하기만 했던 딸은 이제 어느덧 우리와 함께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거나 잡초를 뽑는 일까지 도와줄 만큼 자랐고 그만큼 텃밭 가꾸는 일에 익숙해졌다. 텃밭 농사 덕분에 딸은 영국의 슈퍼마켓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 야채를 알게 되었고, 밭에 난 깻잎이나 부추, 그리고 온실에서 자라는 오이나 토마토는 말하지 않아도 직접 따 먹을 수 있게도 되었다. 나와 남편은 딸의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아이가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말의 뜻을 실감하고 있으며, 아이를 돌보고 길러주는 사람이 무엇에 익숙한가에 따라 아이가 익숙해지는 대상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p>
<p>매 해 우리의 텃밭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우리 집 닭들이다. 닭은 매일 낳는 알로만 우리를 살찌우는 게 아니라 아주 훌륭한 비료가 되는 닭똥으로도 우리에게 이로운 동물이기에 텃밭과 닭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마당이라는 공간이 일반적인 이곳 영국에서 텃밭 가꾸기와 닭 기르기는 특별히 우리 가족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주택에 존재하는 뒷마당은 상당히 발전된 형태의 고급스런 꽃밭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의 전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한 가정 경제의 위축 그리고 환경과 웰빙에 대한 관심 고조라는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뒷마당을 단순한 꽃밭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텃밭을 만들어 야채를 스스로 길러 먹고 나아가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를 키우는 등 기존 집에 존재하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러한 민간의 움직임은 영국 정부의 활동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p>
<p>영국 런던 중심의 유명한 공원 가운데 하나인 세인트 제임스 공원(St James’s Park)이 2008년 5월부터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인데,  ‘승리를 위한 땅 파기: 쓰레기와의 전쟁’(‘Dig for Victory: War on Waste’)이라는 기치 아래 지속가능한 삶과 재활용의 생활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공원 한 켠에 텃밭을 마련하여 여름 내내 인근 학교와 지역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하며 누구나 언제든 들어와 채소와 과일을 키우는 방법을 배우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3">[3]</a> 또한 집에서 닭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2008년 말 50만 가구에 불과했던 것이 작년 5월에는 75만 가구로 부쩍 늘었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최근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4">[4]</a></p>
<p>우리 가족은 2년 전 여름 시부모님께서 잠시 방문하셨을 때 그분들의 축적된 노하우를 빌어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세 마리를 구입하고 함께 닭장을 지어 기르고 있는데, 아직까지 병치레 없이 무탈하게 계란을 잘 낳고 있다. 우리는 암탉들한테 꼬리 부분의 특징을 들어 흰꼬리, 반꼬리, 별꼬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으로 친근하다. 더군다나 먹이를 주거나 곁에 다가가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탓에 딸아이는 직접 계란을 꺼내는 일은 물론이고, 종종 닭 꼬리를 붙잡은 다음 안아주며 오랫동안 노는 일에 지극히 자연스럽다. 실제로 얼마 전 딸은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닭을 키운다’고 자연스럽게 대답했을 만큼 닭에 대한 애착도 크다.</p>
<p> </p>
<p><img title="그림4"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4.jpg" alt="그림4" width="500" height="367" /></p>
<p><img title="그림5"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5.jpg" alt="그림5" width="500" height="370" /></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사진 3] 2년 전 시아버님과 남편이 협동작업으로 지어 놓은 닭장, 그리고 뒷마당에서 자유롭게 먹이를 먹는 닭들</strong></span></p>
<p>우리 집 뒷마당에서 텃밭의 야채와 기르고 있는 닭들만큼이나 딸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있다면 바로 아빠가 손수 지어준 놀이집일 것이다. 텃밭 개간으로 인해 생긴 다양한 형태와 길이의 나뭇가지로 지붕을 얼기설기 엮고, 못 쓰게 된 창문과 문짝 등으로 집 모양을 대충 만든 후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천막을 덮어 씌워 놓은 다음, 집 안 이곳 저곳에서 쓰다 버렸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물건들을 재활용하여 안을 꾸민 딸의 놀이집은 남편의 재활용 기술이 총 집합된 창의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놀이집 터를 닦을 때부터 내부가 완성될 때까지 아빠의 작업을 지켜봤던 딸아이는 자신의 공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오늘도 놀이를 그치지 않는다.</p>
<p> </p>
<p> <img title="그림6"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6.jpg" alt="그림6" width="500" height="412" /></p>
<p><img title="그림7"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7.jpg" alt="그림7" width="500" height="407" /></p>
<p><span style="color: #888888;">[사진 4] 닭장 맞은 편 구석에 남편이 마련해준 딸의 놀이집. 위쪽 사진은 2년 전 갓 지은 놀이집의 모습이고, 아래쪽은 작년 여름 개조된 놀이집의 모습.</span></p>
<p> </p>
<p><img title="그림8"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3/그림8.jpg" alt="그림8" width="500" height="343" /></p>
<p><span style="color: #888888;">[사진 5] 놀이집 안에서 흙가루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딸</span></p>
<p>뒷마당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연물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나는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함께 빨간 벽돌을 잘게 깨부수어 고춧가루를 만들고 이름 모를 들풀들을 뜯어 김치를 담그고 흙가루로 밥을 지어 먹으며 놀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런 방식으로 노는 게 익숙한 딸아이는 조약돌, 나뭇잎, 다양한 나무 열매, 땅 속과 땅 위의 작은 벌레들, 나비와 새, 다람쥐 등 마당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들을 하나씩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집 안에 들어온 이들 물건은 종종 딸아이의 가게놀이에 필요한 상품이 되어 있거나 집 안 한구석을 밝혀주는 장식품이 되어있다. 실내에서만 제한적으로 가지고 놀 수 있게 고안된, 대부분 건전지를 필요로 하는 최신식 장난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활용도를 지닌 장난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연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를 통해 딸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놀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p>
<p>뒷마당과 같은 집 밖의 자연은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아이를 기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양하게 확장되어 가는 아이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자연 교실이다.</p>
<hr size="1" /><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ref1">[1]</a> 만 5세 미만 어린이와 이들 가족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육아•교육 정보 등을 무료 제공하며, 저소득층 부모들을 위한 재취업 교육도 병행하고 있는 정부 지원 시설로서 모든 아이들이 최선의 시작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올해까지 영국 전역의 모든 커뮤니티가 Sure Start Children’s Centre의 서비스 혜택을 받도록 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p>
<p> </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ref2">[2]</a> 영국에서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정부로부터 최저 생활비와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지원을 받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 형태로 인식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도심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건립되고 있는 아파트는 펜트하우스 형태로 고가에 매매되는 대조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ref3">[3]</a> <a href="http://www.royalparks.org.uk/press/2008/press_release_166.cfm">http://www.royalparks.org.uk/press/2008/press_release_166.cfm</a> 참조</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admin/#_ftnref4">[4]</a> 기사참조 <a href="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2008/dec/24/food">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2008/dec/24/food</a> ;</p>
<p><a href="http://www.telegraph.co.uk/foodanddrink/foodanddrinknews/5406430/Back-to-the-Good-Life-thousands-take-up-chicken-ownership.html">http://www.telegraph.co.uk/foodanddrink/foodanddrinknews/5406430/Back-to-the-Good-Life-thousands-take-up-chicken-ownership.html</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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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 미술관 순례]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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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Feb 2010 14:54:36 +0000</pubDate>
		<dc:creator>이 주헌</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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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인류 문화 예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초대형 컬렉션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무려 270만여 점에 달한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20세기의 문화재까지 각종 자료를 수장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럽 회화와 스키타이 유물, 고대 공예품, 동양 문화재 컬렉션이 유명하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기원이 된 해는 1764년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초의 컬렉션이 이루어진 때를 기점으로 삼은 것이고, 건축의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 차르들의 거처인 겨울궁전의 건립 시기까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겨울궁전은 도시의 건립자인 표트르 대제에 의해 세워졌다. 표트르 대제 사후 이 건물은 황폐화됐고, 엘리자베타 여제 때인 1754년 새 겨울궁전이 착공돼 예카테리나 여제 때 완공됐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JPG-이주헌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88" title="JPG-이주헌"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JPG-이주헌1.jpg" alt="JPG-이주헌" width="580" height="148" /></a></p>
<div style="BORDER-RIGHT: 1px dashe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1px dashed; MARGIN-TOP: 30px; PADDING-LEFT: 10px; FONT-SIZE: 9pt;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1px dashe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1px dashed"><strong>대중을 위한 미술 평론가 <span style="color: #00a0e0;">이주헌</span>님과 함께 떠나는 세계미술관 기행. 이번 달에는 지난 국립 푸슈킨 미술관에 이어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갑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세계도시라이브러리의 취지에 공감해주시고, 좋은 글을 보내주신 이주헌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주]</strong></div>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인류 문화 예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초대형 컬렉션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무려 270만여 점에 달한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20세기의 문화재까지 각종 자료를 수장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럽 회화와 스키타이 유물, 고대 공예품, 동양 문화재 컬렉션이 유명하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IMG_1068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94  aligncenter" title="IMG_1068"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IMG_10681.JPG" alt="IMG_1068" width="500" height="333" /></a></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strong>에르미타주 박물관 전경</strong></span></p>
<p class="바탕글">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기원이 된 해는 1764년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초의 컬렉션이 이루어진 때를 기점으로 삼은 것이고, 건축의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 차르들의 거처인 겨울궁전의 건립 시기까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겨울궁전은 도시의 건립자인 표트르 대제에 의해 세워졌다. 표트르 대제 사후 이 건물은 황폐화됐고, 엘리자베타 여제 때인 1754년 새 겨울궁전이 착공돼 예카테리나 여제 때 완공됐다.</p>
<p class="바탕글">에르미타주가 공식적인 박물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852년부터다. 에르미타주가 제국 박물관에서 국립 박물관으로 바뀐 것은 1917년의 10월 혁명 뒤의 일이며, 이후 국유화된 전국의 개인 컬렉션이 에르미타주로 집중되고, 발굴과 탐사로 인한 유물의 발견, 국가 주도의 문화재 매입 등이 이어지면서 에르미타주의 소장 내역은 20세기 한 세기 동안 이전에 비해 무려 네 배가량이나 증가했다.</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IMG_1106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95  aligncenter" title="IMG_1106"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IMG_11061.JPG" alt="IMG_1106" width="500" height="333" /></a></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888888;">전시장 풍경</span></strong></p>
<p class="바탕글">탄탄한 서양 회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에르미타주의 명화 가운데 레오나르도의 &lt;꽃을 든 마돈나&gt;와 &lt;성모자(리타 마돈나)&gt;, 조르조네의 &lt;유디트&gt;, 티치아노의 &lt;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gt;, 라파엘로의 &lt;콘스터블 마돈나&gt;, 카라바조의 &lt;루트 연주자&gt;, 반 데어 베이덴의 &lt;동정녀를 그리는 성 누가&gt;, 루벤스의 &lt;로마의 자비&gt;, 렘브란트의 &lt;돌아온 탕자&gt;와 &lt;다나에&gt;, 엘 그레코의 &lt;사도 베드로와 바울&gt;, 샤르댕의 &lt;예술을 상징하는 정물&gt;, 다비드의 &lt;사포와 파온&gt;, 그로의 &lt;아르콜 다리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gt;, 모네의 &lt;정원의 여인&gt;, 드가의 &lt;머리를 빗는 여인&gt;, 피카소의 &lt;해골이 있는 구성&gt;, 마티스의 &lt;춤&gt;과 &lt;붉은 조화&gt; 등은 미술 서적이나 달력, 엽서 같은 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만큼 일반인의 눈에도 익숙한 그림이 많이 있다.</p>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미타주02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96  aligncenter" title="에르미타주02"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미타주021.jpg" alt="에르미타주02" width="500" height="629" /></a></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strong>레오나르도 다빈치, 성모자, 1490-91년경, 캔버스에 템페라, 42&#215;33cm</strong></span></p>
<p class="바탕글">레오나르도의 &lt;성모자(리타 마돈나)&gt;는 &lt;모나리자&gt;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의 은근하고 기품 있는 표정,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한 미소가 일품인 작품이다. 그림의 성모는 옷 틈으로 살짝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성모의 시선은 오로지 이 아기를 향해 있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이마와 다소곳하게 내려앉은 눈꺼풀, 오똑한 코와 작은 입술, 봉곳한 턱이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미인상이 그대로 구현된 마돈나라 하겠다.</p>
<p class="바탕글">성모의 시선을 받는 아기는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림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다. 성모의 관심사가 아기라면 아기의 관심사는 그의 구원의 대상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기의 왼손에 쥐어진 방울새는 예수의 수난을 상징한다. 새의 머리에 빨강 점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작은 방울새 한 마리가 예수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새의 눈에 가시관을 쓴 예수의 이마에 유난히 깊이 박힌 가시가 보였다. 새는 부리로 이 가시를 뽑았다. 그러자 예수의 핏방울이 새에게로 튀어 그 후로는 자자손손 머리에 빨강 점을 두른 새가 됐다. 바로 자신의 핏방울을 두른 새를 아기 예수는 쥐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운명을 나타내는 상징이다.</p>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미타주04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97  aligncenter" title="에르미타주04"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미타주041.jpg" alt="에르미타주04" width="500" height="390" /></a><strong></strong></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888888;">카라바조, 루트 연주자, 1595년경, 캔버스에 유채, 94&#215;119cm</span></strong></p>
<p class="바탕글">카라바조의 &lt;루트 연주자&gt;는 에르미타주가 소장한 유일한 카라바조 작품이다. 그림은, 왼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강하게 부각되는 연주자와 주변의 꽃과 과일, 악보, 악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앳된 얼굴의 연주자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 특유의 호소하는 듯한 눈빛을 띠고 찬찬히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현실의 한 장면을 사진처럼 낚아 올린 깔끔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이 그림은 사진처럼 단순히 대상의 실재를 포착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 작품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바니타스 정물화’의 교훈적 색채를 깔고 있다. 바니타스는 허영, 허무, 덧없음, 무상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바니타스 정물화는 그림의 소재인 정물들을 통해 이런 정서를 되새기게 하는 그림이다. 꽃은 아름다우나 곧 진다. 열매와 채소도 따고 뽑은 이상 곧 시들고 마르게 된다. 젊음 또한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노래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게 젊음이다. 그림 속 바이올린을 보라. 현이 끊어져 있다. 더 이상 연주하기 어렵게 된 저 바이올린의 처지가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종말을 예고한다. 삶이란 그렇게 덧없고 허무한 것이다.</p>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미타주13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98  aligncenter" title="에르미타주1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미타주131.jpg" alt="에르미타주13" width="500" height="385" /></a></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888888;">루벤스, 로마의 자비(시몬과 페로), 1612년경, 캔버스에 유채, 140.5&#215;180.3cm</span></strong></p>
<p class="바탕글">에르미타주가 소장한 루벤스의 걸작 &lt;로마의 자비&gt;는 무엇보다 그 쇼킹한 표현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고대 로마에 페로라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아버지 시몬이 큰 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 형벌의 내용은 감옥에 가둔 뒤 밥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페로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매일 감옥에 찾아가 감옥의 간수들이 보이지 않을 때 몰래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먹이기로 한 것이다. 마치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그렇게 페로는 아버지에게 젖을 물렸다. 그 덕택에 아버지는 굶어죽지 않고 오히려 점차 원기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학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쓴 &lt;로마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gt;에 나오는 내용으로, 막시무스는 로마 사람들 사이에서 효와 우애, 나라 사랑 등의 미덕이 더욱 고양되기를 바라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p>
<p class="바탕글">루벤스의 그림에서 우리는 그 효성스러운 딸과 그 딸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우 센세이셔널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효심과 다 큰 딸이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물린다는 윤리적 갈등이 루벤스의 살아있는 붓 길로 인해 더욱 강렬하게 충돌한다. 막시무스의 뜻을 좇아 아버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우선임을 부각시킨 루벤스는 아버지에게 검은 옷을 둘러 그의 처지가 자아내는 비극을, 딸에게 붉은 옷을 입혀 자식으로서의 뜨거운 사랑을 나타냈다. 한 번 보면 누구도 잊기 어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p>
<p class="바탕글"> </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마주-A3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99  aligncenter" title="에르마주 A31"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2/에르마주-A31.jpg" alt="에르마주 A31" width="500" height="331" /></a></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888888;">마티스, 춤, 1910, 캔버스에 유채, 260&#215;391cm</span></strong></p>
<p class="바탕글">에르미타주는 마티스의 걸작을 여러 점 소유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위대한 컬렉터인 시추킨과 모로조프의 열렬한 수집열 덕분이다. 이 가운데 &lt;춤&gt;은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매우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이다. 신선한 초지 위에서 강강술래 같은 원무를 추는 누드 군상. 세상의 모든 짐과 걱정, 제약을 떨쳐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순수와 해방의 기쁨을 발산하고 있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이렇게 기쁜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것이다. 우리의 편견과 자기 부정, 질시, 지나친 욕망이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를 걷는 일은 이렇게 모든 것을 툭툭 털고 즐겁고 편안하게 춤을 추는 데서 시작한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기쁨과 생명력으로 충만한 춤꾼들의 무대이다. 이 그림을 구입한 시추킨은 “나는 이 그림이 너무 좋아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이 누드를 우리 집 층계 벽에 걸어 놓았다”며 마티스에게 음악을 주제로 한 그림을 하나 더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단순한 색을 중심으로 마법과 같은 기쁨을 창조하는 마티스의 위대함을 일찍부터 간파한 컬렉터의 눈썰미가 돋보인다.</p>
<p class="바탕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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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심 르네상스 프로젝트]문화·예술발전소를 만들어 나가는 목포의 유휴공간 재생프로젝트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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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2 Jan 2010 02:07:35 +0000</pubDate>
		<dc:creator>김 준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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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여기 영화세트장이야?!
원도심을 처음 찾은 이들의 반응이다. 목포시의 원도심은 일제강점기의 건축물로 즐비하기 때문에 마치 영화세트장에 온 듯 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조계지였던 만호동과 유달동 일대의 번영로길이 그 중심에 있다. 그 당시만 해도 목포시는 8.6㎢의 도시면적에 인구 6만인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여 一黑(김), 三白(면화, 쌀, 소금)의 집산지였다. 그 이후 1970년대 들면서 목포시는 다른 여타 지방의 도시처럼 도시가 확대되고 2000년 이후에는 하당신도시 및 남악신도시가 목포시의 도심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로 원도심은 점점 쇠퇴하고 빈 건물이 증가하고 인근 수산시장이나 재래시장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color: #ff9900;"><strong><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반공호1.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만호진.JPG"></a><a></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옛-동양척식.JPG"></a></strong></span></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ff9900;"><strong><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h5-copy.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50" title="main_h5 copy"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h5-copy.jpg" alt="main_h5 copy" width="550" height="351" /></a></strong></span></p>
<div style="margin-top: 30px; padding: 10px; font-size: 9pt; border: 1px dashed;"><span style="color: #00a0e0;"><strong>김준호</strong></span>님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 및 도시사회학을 전공하고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연구원으로 지역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목포시, 완주군, 광주시 등을 대상으로 지역 및 커뮤니티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div>
<p><span style="color: #ff6600;"><strong> </strong></span></p>
<p><span style="color: #ff6600;"><strong>PART 2. </strong><strong>목포에서 핀란드 헬싱키를 꿈꾸다</strong></span></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여기 영화세트장이야?!</span></strong></p>
<p>원도심을 처음 찾은 이들의 반응이다. 목포시의 원도심은 일제강점기의 건축물로 즐비하기 때문에 마치 영화세트장에 온 듯 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조계지였던 만호동과 유달동 일대의 번영로길이 그 중심에 있다. 그 당시만 해도 목포시는 8.6㎢의 도시면적에 인구 6만인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여 一黑(김), 三白(면화, 쌀, 소금)의 집산지였다. 그 이후 1970년대 들면서 목포시는 다른 여타 지방의 도시처럼 도시가 확대되고 2000년 이후에는 하당신도시 및 남악신도시가 목포시의 도심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로 원도심은 점점 쇠퇴하고 빈 건물이 증가하고 인근 수산시장이나 재래시장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원도심에 사는 주민들도 그 공간에서 희망을 찾기 보다는 건물이나 토지를 처분하고 신도심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있고 목포시도 일부 공간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을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목포 원도심의 다양한 공간들</span></strong></p>
<p>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간 속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숨어있다. 얼마 전까지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었던 옛 일본영사관 건물은 벽돌과 나무로 지어져 있고 옛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 유달산 중턱에 있어 원도심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외벽에는 전쟁으로 인한 총탄의 흔적들이 남아있어 그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건물 뒤에는 일제강점기 때 방공호가 그대로 남아있어 일본인들의 전쟁에 대비한 일본인들의 철저한 준비를 엿볼 수 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옛일본영사관3.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559  aligncenter" title="옛일본영사관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옛일본영사관3.jpg" alt="옛일본영사관3" width="500" height="375" /></a></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목포문화원으로 활용되었던 옛 일본영사관</span></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반공호"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반공호1.jpg" alt="반공호" width="500" height="375"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일제강점기 때의 방공호</span></p>
<p>또한 현재 근대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역시 당시의 건축양식을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과거 원도심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당시 사용했던 육중한 금고도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옛 일본식 적산가옥이 카페로 활용되고 있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옛 동양척식"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옛-동양척식.JPG" alt="옛 동양척식" width="500" height="333"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근대역사박물관으로 활용 중인 옛 동양척식주식회사</span></p>
<p>또한 5분 거리에는 조선시대 만호진 터가 있어 500여 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중심상권이었던 본정통을 따라 적산가옥들이 100m 정도 양쪽으로 줄지어 있다. 그 중에는 한 자리에서 모자를 팔아오던 갑자옥 모자점, 옛 동화부인상회이자 일본백화점이었던 ‘샤론어린이집’이 빈 공간으로 남아있고 옛 화신백화점이었던 김영자 화실도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또한 과거 일본 벽돌창고가 건재사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옛 호남은행, 옛 신사건물이 교회로 활용되었던 동본원사 등 많은 역사자원들이 즐비해 있다. 이러한 빈 공간은 과거 이 공간에서 출발한 서커스단을 부활시키거나 양조장, 음식, 국수공장, 다다미 여인숙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할 수 있다. 이 경우 Korjaamo Culture Factory처럼 장소성을 보존한다는 전제 하에서 특정 기업이 부지를 임대하거나 매입해서 다양한 문화 이벤트 공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만호진"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만호진.JPG" alt="만호진" width="500" height="750"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조선시대 만호진 터</span></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목포1.jpg"></a><span style="color: #888888;"><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목포3.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55  aligncenter" title="목포"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목포3.jpg" alt="목포" width="550" height="370" /></a></span></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목포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br />
</span><span style="color: #888888;">1 갑자옥 모자점 2 옛 동화부인상회 3 옛 화신백화점 4 건재사로 활용중인 벽돌창고</span></p>
<p>또한 인근 삼학도 방향으로는 산업철도가 있는데 곧 폐선 될 예정이다. 산업철도의 종착지에는 밀가루를 만드는 한국제분 공장이 있는데 2011년 당진군으로 이전해 가면서 빈 공간이 된다. 이 거대한 구조물의 경우 헬싱키의 KAAPELI처럼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임대해 사용하거나 지역도서관 그리고 미술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바다가 바로 앞에 있고 공원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더 없이 훌륭한 창작공간이 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한국제분"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한국제분.JPG" alt="한국제분" width="500" height="333"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88888;">목포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 중의 하나인 한국제분</span></p>
<p>그리고 유달산 아리랑 고개를 넘어 서산동, 온금동에는 과거 조선내화 벽돌공장이 현재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 공간은 과거 째보선창이라고 해 배가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버려진 빈 배를 잘 리모델링해 째보선창을 복원하고 비어있는 벽돌공장은 SUVILAHTI처럼 지역의 문화예술센터로 지역민이 밴드, 연극, 공방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과거 벽돌공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벽돌을 활용한 다양한 기념품 및 상품을 제작해 지역공동체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도 있다.</p>
<p><strong> </strong></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또 하나의 아파트촌? 아니면 대한민국의 근대역사문화 일번지?</span></strong></p>
<p>과연 이 공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까? 그 누구도 명확하게 대답하지도 못 할 것이고 또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p>
<p>먼저 우리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시대적 흐름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는 배고픔보다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다시 말해 환경, 문화 등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고 있다. 반대로 6,70년 대 우리나라의 핵심산업이었던 제조업, 중화학공업 등은 이미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거나 이전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도시정책 측면에서 꾸준한 기업유치는 계속적으로 해야겠지만 그것이 핵심이 되는 시대가 점점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일본 등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는 문화와 환경을 중심으로 한 도시정책이 핵심이 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목포의 원도심은 우리나라의 근대공간을 가장 잘 재현할 수 있는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p>
<p>또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비용부분이다. 우여곡절 끝에 민간 자본을 유치해 아파트를 지을 수 있지만 이미 목포시 신도심인 하당신도시, 남악신도시 등도 미분양이 있는 상황에서 원도심에 조성되는 아파트가 얼마나 분양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 비용이 민간 자본으로 진행되는 것이어도 크게 보면 사회적 비용이므로 미분양이 될 시 결국은 커다란 낭비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공간에 전면재개발이나 아파트 개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여전이 필요하다.</p>
<p>부가적으로 고려할 것은 바로 이 공간의 희소성과 결과적으로 제공될 다양성을 주목해야 한다. 희소성이라고 하면 바로 오밀조밀한 근대공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천이나 군산, 진해, 마산 등 우리나라에 다양한 근대공간이 있지만 목포시처럼 뒤에는 유달산, 앞에는 바다와 삼학도라는 천해의 자연환경이 둘러싸고 있고 도보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범위를 갖는 곳은 목포시가 유일하다. 또한 이 유휴공간들을 활용해 박물관, 미술관, 주민창작센터, 여객터미널과 연계한 관광객 숙박사업, 도서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보해 낼 수 있다. 이는 원도심에 부족한 문화, 복지, 교육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좀 더 많은 주민이 활용하는 살아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p>
<p>이러한 힌트를 감지한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많은 과제가 남아있고 또한 변수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들의 쌓이고 쌓이면 좀 더 좋은 아이디어들과 합의를 통해 핀란드 헬싱키같이 그 공간에 꼭 맞는 모습이 나타나리라 기대해 본다.</p>
<p><span style="color: #ff6600;"><strong>PART 3. </strong><strong>도시 유휴공간 재생의 시사점 </strong></span></p>
<p>앞서 소개한 헬싱키의 산업공장, 전차수리고, 전력발전소 등의 문화공간들이나 목포시의 역사성을 가진 유휴공간들은 각각의 형태는 다르지만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뚜렷한 방향과 목적이 없이 방치되어 있었던 장소를 성공적으로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키거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 이들의 공간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첫째는 창조적 컨텐츠이다.</span> </strong>러시아에 부채를 갚으며 전선산업에 부흥기를 가져다 주고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KAAPELI를 비롯하여, KOYAMOO CULTURAL HOUSE는 대중교통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전차의 본거지였으며 Suvilahti는<strong> </strong>산업화 시대를<strong> </strong>이끌었던 전력발전소였다. 이 모두 당시 시대의 변화나 요구에 발맞추어 건축되었던 것이며 핀란드 역사의 한 켜를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으로 공간이다. 공장이나 전차고 등과 같은 건물들은 건축 구조상 용도 변경도 쉽지 않고 때로는 지역 재개발로 변화되는 주변 환경과도 조화롭지도 않아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공간들이 모두 훌륭한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형식적이고 한정적 이였던 공간을 예술과 문화라는 창조적 컨텐츠와 결합시키며 문화 예술발전소라는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 그리고 남겨진 공간에 대한 숙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역사와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는 항구도시로 물류와 산업의 중심지였던 목포의 원도심 공간에 남겨진 역사적 유휴공간을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가진 창조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strong> </strong></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둘 째는 공공을 위한 프로그램이다.</span> </strong>때론 건축물들이 보존 되더라도 경제적인 효과나 자본주의의 논리에 치우쳐 상업적인 용도[호텔, 카페 등]로만 변경이 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KAAPELI, SUVILAHTI 그리고 Korjaamo<strong> </strong>Culture Factory 는 문화라는 큰 틀 안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융합시켜 대중을 위한 공간을 창출하였다. 철저하게 상업적 목적이 배제되지는 않았지만 카페나 편의시설, 도서관과 서점, 아뜰리에와 오피스텔, 갤러리와 공연장 등 대중의 공익을 위한 장소가 항상 함께 고려 되었다. 또한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옥외공간은 잔디, 광장 등으로 공공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장소가 고립되거나 제외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있다. 이렇게 물리적 경계가 없는 주변은 대중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듦으로 좀 더 친근하고 불편함이 없는 공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 또한 목포의 원도심 공간에서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상업적 가치로 사람을 끌어들일 경우에는 우선 원도심 공간의 역사적 가치가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동시에 그 상업적 가치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공간이 짧은 시간에 다시 쇠퇴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공공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원도심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뿐 아니라 목포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그 지속성을 다양한 형태로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콘텐츠가 시기별로 주민의 관심사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뀜으로서 경직된 공간이 아닌 융통성을 가진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strong> </strong></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셋 째는 비전과 브랜드로써의 가치이다.</span> </strong>문화공간이 단기적으로 주목을 받고 한시적으로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발전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데는 비전과 장기적인 계획을 통한 체계적인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 이였다. 문화 공간의 브랜드화는 차별적인 공간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데 일조를 하였다. 문화공간의 모태가 되었던 ‘공장’이라는 장소는 과거의 흔적을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로 만들어 주었으며 CI의 체계적인 관리, 대형 전시회 및 공연 개최, 유명 브랜드와의 협력, 홍보 상품 디자인 개발 등 도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내부에 고용된 전문 인력들과 조직적인 체계도 비전을 실천하는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까펠리라는 장소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여 주었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수빌라흐띠에도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었다. 목포시의 경우도 근대역사문화 공간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한 일관성 있는 접근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시키는 것이 공간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이라 판단된다.<strong> </strong></p>
<p><strong><span style="color: #3366ff;"><span style="color: #3366ff;">마지막으로 경험적 공간 만들기이다.</span> </span></strong>건축물을 허물지 않은 전제하에 새로운 용도로의 변경이 논의 되었을 때 리노베이션의 핵심은 공간들의 고유의 느낌을 최대한 간직하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이들 공간은 사실,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 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외관으로 주목 받지도 않지만 흉내 낼 수 없는 진정함이 담겨 있다. 외관, 껍데기만 남긴 채 전혀 다른 이질적인 컨셉으로 공간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의 이야기들이 끄집어 내어 그것들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것 이였는데 이 과정에서 건축가의 날카로운 안목과 센스가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리노베이션은 내부 전체를 완전히 리노베이션 하는 비용의 1/5~1/10의 절감효과를 가져다 주어 경제적인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공간 자체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충분한 영감이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데 까펠리 공장 기계실이 옛 그래도 보존된 거대한 MARINE HALL은 유동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전시회나 콘서트의 행사장으로 사용되어 관람객들에게 이색적인 공간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 지점이야말로 목포시 원도심에서 가장 중요하게 찾아내야 할 부분인데 역사적, 공간적 맥락을 최대한 활용해서 리노베이션이나 프로그램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p>
<p>21세기는 문화의 경쟁력이 도시의 성장을 가늠한다는 창조도시, 문화도시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으며 많은 도시들이 문화를 도시발전의 자원으로 활용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부흥하여 유럽에서는 도심의 유휴공간을 문화, 예술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들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앞선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관이나 예술가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의지나 논리가 아닌 쌍방향의 대화와 노력 그리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다져진 토양아래 형성된 문화 예술 공간은 자생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사회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p>
<p><span style="color: #888888;"><span style="color: #808080;">* 본 글은 희망제작소와 월간도시문제와 함께하는 「세계환경도시 기획」의 일환으로 월간도시문제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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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심 르네상스 프로젝트]문화·예술발전소를 만들어 나가는 헬싱키·목포의 유휴공간 재생프로젝트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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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1 Jan 2010 00:00:28 +0000</pubDate>
		<dc:creator>김 유선</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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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헬싱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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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인구 5.5명의 유럽 변방의 작은 도시 헬싱키가 유럽 내 다른 대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2004년, 2006년 유럽경쟁력 지표 조사[European Competitiveness Index]에서 헬싱키가 위치한 핀란드의 남부지역 Uusima는 각각 1위, 2위로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헬싱키의 중요한 자산으로 창조 및 지식 기반의 산업을 꼽고 있다. 위의 지표조사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창조 및 지식 기반의 원동력이 할 수 있는 과학기술 및 문화 예술산업은 헬싱키 도시의 비전을 그려 나가고 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11.jpg"></a><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h5.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17" title="main_h"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h5.jpg" alt="main_h" width="550" height="467" /></a></p>
<div style="margin-top:30px; padding:10px; font-size:9pt; border:1px dashed"><span style="color: #00a0e0;"><strong>김유선</strong></span>님은 2007년 헬싱키 예술디자인 대학 공간디자인 석사과정에 입학, 2009년 6월까지 코펜하겐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에서 교환학생 자격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8217;도시 공간의 공공디자인&#8217;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도시라이브러리에 &#8220;디자인과 건축기행&#8221;이라는 제목으로 공공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div>
<p><span style="color: #e1771d;"><strong> </strong></span> </p>
<p><span style="color: #e1771d;"><strong>Part 1. </strong><strong>문화, 예술 발전소를 만들어 나가는 헬싱키의 유휴공간 재생프로젝트 </strong></span></p>
<p><span style="color: #1b91ed;"><strong>1. </strong><strong>헬싱키의 도시 경쟁력과 문화 예술 정책<br />
</strong></span>인구 5.5명의 유럽 변방의 작은 도시 헬싱키가 유럽 내 다른 대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2004년, 2006년 유럽경쟁력 지표 조사[European Competitiveness Index]에서 헬싱키가 위치한 핀란드의 남부지역 Uusima는 각각 1위, 2위로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헬싱키의 중요한 자산으로 창조 및 지식 기반의 산업을 꼽고 있다. 위의 지표조사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창조 및 지식 기반의 원동력이 할 수 있는 과학기술 및 문화 예술산업은 헬싱키 도시의 비전을 그려 나가고 있다.</p>
<p>사회복지국가의 틀을 갖추고 있는 핀란드에서 예술, 문화산업의 가장 큰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정부와 지방 자체단체이다. 핀란드의 문화정책의 기본 틀은 지방 자치단체는 대중들을 위한 공공 문화서비스를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정부는 전문 예술인, 단체 및 협회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 황제 짜르에 의해 핀란드의 수도가 1812년에 뚜르꾸에서 헬싱키로 옮겨진 후 헬싱키는 핀란드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동시에 문화, 예술의 중심이 되는 도시로 성장하였다. 2000년 헬싱키 탄생 450주년과 유럽의 문화도시[Europe’s Cultural Capital]로 선정은 헬싱키의 문화예술 분야를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이 후 꾸준히 문화, 예술활동을 위한 지원을 늘려나가고 있다. 2007년, 헬싱키 시의 예산 3% 정도 되는 10만 유로를 초과한 금액이 예술과 문화부문에 사용 되었으며 문화예술 부문은 고용에 있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 예술부분에 고용된 시의 소속 직원은 대략 1,000명 정도로 추산이 되며 전체 직원의 3%에 해당이 되는 규모이다. 200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헬싱키 전체 고용의 8.5%가 문화, 예술에서 창출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헬싱키 시의 성장동력인 셈이다.</p>
<p align="left">헬싱키에는 다양한 형태로 시가 관여를 하고 있는 문화 공간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로 시에서 직접 운영, 관리를 하는 문화센터이다. 현재 헬싱키 내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8개의 문화센터가 있으며 공연장, 갤러리, 도서관, 예술교육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시에 직속으로 소속이 되어 있는 문화센터는 각 지역에 고르게 분배되어 있으며 예술, 문화 지원이 균형적으로 구석구석 모든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전시나 공연, 예술강좌 등의 프로그램은 예술학교, 협회, 단체 등과 협력하여 기획하고 있으며 많은 프로그램들이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진행되고 있어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다. 또한 각각의 문화센터 마다 현대무용, 음악, 영화 등으로 특화된 도서관과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다음으로는 헬싱키 시가 투자를 하여 운영하는 독립된 문화공간이 있다. 이러한 문화공간은 별도의 법인 형태로 존재를 하는데 시에서 소유한 건물을 문화 예술공간으로 바꾸고 이후 시에서 자체적으로 설립한 법인회사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건물을 관리[임대 및 유지, 보수]하는 등 예술 문화 센터를 독립적으로 운영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주요 소득원은 임대수입을 통해 얻어지는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임대가격은 건물을 유지, 관리 할 수 있는 정도로 시장 가격보다 낮게 책정이 되어 있다. 뒤에서 언급될 KAAPELI<strong> </strong>나 SUVILAHTI<strong> </strong>와<strong> </strong>같은 곳이 이런 경우에 해당이 된다. 마지막으로 시와 사기업이 공동투자를 하여 운영이 되는 형태가 있는데 Korjaamo Culture Factory 가 이 예라 할 수 있다.</p>
<p><strong><span style="color: #1b91ed;">2. </span></strong><strong><span style="color: #1b91ed;">유휴공간은 문화, 예술에 영감의 원천</span>  </strong></p>
<p>후기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로 도래하며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 중에 하나는 도시의 번영을 가져다 주었던, 산업화 시대의 공장들 이였다. 도심 내 혹은 가까운 근교에 위치하였던 공장들은 도시의 개발 정책에 따라 부지를 이전하여야 했고 생산, 가동 중단으로 폐쇄된 공장들에 대한 새로운 용도 또는 공장 건물의 철거 여부도 종종 뜨거운 정책적 이슈가 되었다. 그러한 문제는 헬싱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용처가 모호해진 도심의 유휴공간을 문화, 예술의 장으로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며 도시의 성장 동력원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럼 헬싱키 도시공간의 유휴공간을 어떻게 탈바꿈 시키고 있는지 세 곳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p>
<p><strong>1) </strong><strong>노키아의 전선 공장에서 아티스트들의 터전이 된 KAAPELI<br />
</strong>헬싱키 메스로 노선의 첫 역인 루오호라흐띠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한때 노키아 전선의 제조 공장 이였고 이제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장 및 복합 문화 공간이 된<strong> KAAPELI</strong> 가 위치해 있다.</p>
<p><strong><img title="01"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11.jpg" alt="01" width="500" height="375" /><br />
</strong><span style="color: #888888;">KAAPELI 전경</span></p>
<p> ‘까펠리’라[핀란드어로 전선]라 불리는 이 곳의 탄생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핀란드에서 가장 큰 면적을 지닌 빌딩이기도 한 이 공장은 세계2차 대전 후 러시아에게 많은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던 핀란드가 채무를 전선으로 납품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동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핀란드의 전선 산업과 경기발전에 부흥을 가져다 주었다. 1960년 전선공장은 콘센서, 알루미늄 프로파일,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신규사업을 펼치고 1967년에 산림 산업을 운영하고 있던 노키아와 합병을 하게 된다. 1960년, 헬싱키 시는 루오호라흐띠에 새로운 주거단지 개발계획을 내 놓았고 노키아 까펠리[Nokia Kaapeli]는 공장시설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어 임시적으로 이전장소에 임대를 주기 시작했다. 많은 예술가들과 소규모 관련 산업들이 저렴하고, 조용한 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1987년 헬싱키 시와 노키아는 노키아 까펠리를 헬싱키 소유권으로 이전하데 동의하고 공장을 분리하여 학교, 호텔, 박물관 등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제안서를 만들었다. 이에 대응하여, 까펠리의 입주자들은 프로 까펠리[Pro Kaapeli]라는 협회를 발족하였다. 입주자들은 자신들이 가꾸어 놓은 터전을 지키고, 빌딩을 보전하는 동시에 보다 효과적인 문화 예술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들의 노력은 언론을 통하여 큰 이슈가 되었고 오랜 논의 끝에 헬싱키는 건물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보존하기로 하기도 결정하였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까펠리는 전선공장에서 예술, 문화를 만들어 내는 발전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3곳의 박물관과 9곳의 갤러리, 댄스공연장, 운동시설, 예술학교[유아들을 위한 건축학교], 250명 남짓 되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리허설 스튜디오, 방송국 그리고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 곳 작업실의 99%가 임대가 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이 되고 있다.</p>
<p><img title="02"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2.jpg" alt="02" width="500" height="375" /><br />
<span style="color: #888888;">KAAPELI 로비와 인포메이션 센터</span><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32.jpg"></a> </p>
<p><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28" title="0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32.jpg" alt="03" width="500" height="375" /><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888888;"><br />
Daniel Palillo fashion show, KAAPELI</span></span></p>
<p><stron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33" title="04"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41.jpg" alt="04" width="500" height="395" /></strong><span style="color: #888888;"><br />
섬유 디자이너 작업실_ KAAPELI <br />
</span><br />
<strong>2) 전력 발전소에서 문화 예술센터로 탈바꿈 되고 있는 SUVILAHTI</strong></p>
<p><span style="color: #888888;"><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7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45" title="07"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71.jpg" alt="07" width="500" height="375" /></a></span><span style="color: #888888;"><br />
Suvilahti 안내도</span></p>
<p><img title="08"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8.jpg" alt="08" width="500" height="375" /><br />
<span style="color: #888888;">Suvilahti 전력 발전소 100주년 기념 행사로 진행되고 있는 100M Graffiti</span></p>
<p><span style="color: #888888;"><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9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46" title="09"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91.jpg" alt="09" width="500" height="375" /></a></span><span style="color: #888888;"><br />
Suvilahti 현재 모습</span></p>
<p>수빌라흐띠는 수빌라흐띠 지역에 전력발전소를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있는 아직은 미완성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이다. 까펠리의 운영의 노하우가 그 기반이 되었고 2개의 가스 저장고와 9개의 공장건물 중 일부가 리노베이션 되었으며 작업실, 아뜰리에, 공연장을 위한 관리 설비 등이 2010년에 모두 완료될 예정이다. 이곳의 모태가 되는 전력 공장은 1909년에 가동을 시작한 5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고 1976년에 운영이 중단되었다. 1980년 대 초반에는 내부의 리노베이션으로 창고와 헬싱키 전력 직원들의 운동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극단과 영화사, 사진 스튜디오 등이 임대를 하면서 문화공간으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까펠리가 거주 예술가들의 자생적인 노력이 불씨가 되어 만들어졌던 공간 이였다면, 수빌라흐띠는 만성적으로 부족한 예술가들의 작업공간과 예술, 문화센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에서 적극적으로 비전을 세워 추진을 해나간 경우이다. 까펠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내부 설비[냉난방, 환기, 자동화시스템]와 토지 정화작업은 헬싱키 시에서 부담을 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까펠리를 운영하고 있는 법인의 소유권으로 이전되어 임대를 위한 내, 외부 인테리어 공사를 맡아 관리하고 있다. 한편, 이곳이 위치하여 있는 깔라사따마 지역은 화물 선착장을 헬싱키 북쪽의 외곽으로 이전하며 새로운 주거 오피스 지구로 개발 중인데, 수빌라흐띠는 주변지역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역에 문화 예술 촉매제의 역할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매년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FLOW FESTIVAL이라는 2박 3일의 음악 축제는 수빌라흐띠에 이제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며 도시 축제의 한 획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p>
<p><strong>3) </strong><strong>전차 저장고에서 문화센터로 변신한 </strong><strong>Korjaamo Culture Factory</strong><strong> </strong></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5.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11" title="05"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5.jpg" alt="05" width="500" height="375" /></a><span style="color: #888888;"><br />
Korjaamo Culture Factory 중정</span></p>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6.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507" title="06"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06.jpg" alt="06" width="500" height="375" /></a><span style="color: #888888;"><br />
Korjaamo Culture Factory 내 전차 박물관</span></p>
<p>꼬르야모 컬처팩토리는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차 저장고를 도심 속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킨 곳으로 핀란드에서 가장 큰 문화 예술 이벤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곳은 시에서 출자한 기업이 아닌 독립 기업 꼬르야모가 운영을 하고 있었으며 전시나 공연의 무대설치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덕션 전문가들과 전시기획 큐레이터 등이 고용되어 있다. 꼬르야모는 2008년 헬싱키의 명실상부한 문화 이벤트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헬싱키 시와 헬싱키 시립 박물관과 파트너 쉽을 가지며 공간을 리노베이션 하였으며 현재까지도 헬싱키의 도시의 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요소인 전차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전차 박물관도 이곳에 새롭게 단장되었다. 갤러리, 전시실, 공연장, 카페, 바, 음악 및 필름 전문 서점, 소규모 사업을 위한 오피스 등이 위치해 있으며 프로그램은 공연, 연극, 비주얼 아트, 미디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꼬르야모 컬처팩토리는 유럽에 독립문화 센터들의 네트워크인 Trans Europe Halles의 멤버이기도 하다. Trans Europe Halles는 상호, 다문화 문화 교류 프로젝트를 코디네이트 하는 비영리 기관인데 이곳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문화센터가 오래된 산업, 공장 빌딩들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형식과 전통에 물음을 던지며 주로 언더그라운드, 비주류 문화를 지원하는 등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p>
<p> </p>
<p><strong><span style="color: #888888;">참고문헌 [핀란드 헬싱키]<br />
</span></strong>-Jan Verwijnen and Panu Lehtovuori[1999], Creative cities,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Helsinki<br />
-Robert Huggins and Will Daview[2006], European Competitiveness Index 2006_2007, Robert Huggins Associates Ltd.   <br />
-Review of Arts and Culture in Helsinki 2008:30, Publication by City of Helsinki Urban facts<br />
-Arts and Culture in Helsinki 2005:6, Publication by City of Helsinki Urban Facts<br />
-http://www.kaapelitehdas.fi/<br />
-http://www.suvilahti.fi/<br />
-http://www.korjaamo.fi/</p>
<p> </p>
<p><strong>*김유선(코펜하겐 특파원) <a href="mailto:ㅣyousun.green@gmail.com">ㅣyousun.green@gmail.com</a></strong></p>
<p><span style="COLOR: #888888"><span style="COLOR: #808080">* 본 글은 희망제작소와 월간도시문제와 함께하는 「세계환경도시 기획」의 일환으로 월간도시문제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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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심 르네상스]생태 발자국과 함께하는 공동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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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7 Jan 2010 14:57:21 +0000</pubDate>
		<dc:creator>이 인선</dc:creator>
				<category><![CDATA[Feature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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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도시와 기후변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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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영국]]></category>
		<category><![CDATA[이인선]]></category>
		<category><![CDATA[탄소발자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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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런던 근교 Sutton에 위치한 베드제드(Bedzed: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 생태마을은 82가구, 업무/주거 18유닛과 1560m²의 업무공간과 공동체 시설이 들어선 생태 주거단지다. 베드 제드 생태 마을은 일반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탄소발자국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 못지 않게 교통수단, 음식과 쓰레기 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과 인프라에 대한 접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strong><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3.jpg"></a></strong><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b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19" title="main_b"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b1.jpg" alt="main_b" width="500" height="141" /></a> </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main_b.jpg"></a></strong></p>
<div style="margin-top:30px; padding:10px; font-size:9pt; border:1px dashed"><span style="color: #00a0e0;"><strong>이인선</strong></span>님은 제드팩토리 한국지역 담당 건축가입니다. 1990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에 가입된 건축가로서 영국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선임 건축사로 수년간 실무를 쌓았습니다. RIBA Sustainable Future Group에서도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 ZEDfactory에서 Head of Korea Division으로 일하고 있습니다.</div>
<p><strong> </strong> </p>
<p><strong><span style="color: #ff6600;">생태 발자국과 함께하는 공동체(Communities with greener footprint)</span></strong></p>
<p style="TEXT-ALIGN: right"><strong> </strong><strong>글: 이인선(건축가, 제드팩토리 한국지역 담당)</strong></p>
<p>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영국 가정의 매년 탄소배출 소비는 다음과 같다.<br />
-   3분의 1은 집을 따뜻하게 하고 동력을 공급하는데<br />
-   3분의 1은 개인차량 사용, 출.퇴근 통근과 육로를 통한 여행에<br />
-   3분의 1은 원거리 수송식품에 사용되는데, 보통 영국가정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2000마일을 넘게 이동한다.</p>
<p>위의 연구 결과는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 디자인이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건물 오늘날 영국 일상 생활을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1.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599 aligncenter" title="b1"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1.jpg" alt="b1" width="442" height="442" /></a></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lt;출처: The ZEDbook – Taylor and Francis sept 2007&gt;</span></p>
<p>런던 근교 Sutton에 위치한 베드제드(Bedzed: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 생태마을은 82가구, 업무/주거 18유닛과 1560m²의 업무공간과 공동체 시설이 들어선 생태 주거단지다. 베드 제드 생태 마을은 일반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탄소발자국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p>
<p>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 못지 않게 교통수단, 음식과 쓰레기 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과 인프라에 대한 접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p>
<p>기존 가정이 보여주는 현대적 삶의 방식은 역기능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역기능적인 우리의 일상 활동을 다시 뒤돌아보면, 개개인이 수량화할 수 있는 이익을 얻으면서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p>베드제드 단지 조성부지로 선정된 장소는 London Borough of Sutton의 소유지로, 당국의 협조덕택에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낮은 비용으로 부지를 개발업체에 팔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위한 아이디어는 빌 던스터(Bill Dunsterㅣ제드팩토리 (Zedfactory)의 대표)의 이론적 연구에서 비롯되었고, 1996년 심포지엄에서 소개되었다.</p>
<p>빌 던스터는 대중교통 시설과의 연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선정된 부지를 검증했으며, 이러한 혁신적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비전과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바이오리저널 개발 그룹(Bioregional Development Group),  피보디 트러스트(The Peabody Trust)와  파트너쉽을 형성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적절하고, 다목적인 모델을 실현시켰다.</p>
<p>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1998년, 그 당시로서는 아주 혁신적이었던 계획을 허가 받기 위해 서튼(Sutton) 당국의 지원이 필요했던 시기였으며, 많은 관계자들이 함께 협력하고 참여했던 시기였다. 예를 들어 베드제드 내에 런던에서는 처음으로 자동차 클럽(일종의 카쉐어링 제도)을 도입하였고, 당국은  단지에 근접한  대중교통을 감안하여  주차장 크기를 줄이는 규정(영국 평균 기준 가구당 1.5대의 주차공간 대신 단지 내 주차장은 가구당 0.5대로 주어짐)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도록 가구당 1.5대의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p>
<p>당시 런던 남부에 위치한 크로이든(Croydon)시 에서는 재생 에너지 원료로 목재 찌꺼기를 활용한 나무칩을 개발했는데, 베드제드 생태마을은 이를 단지에 필요한 에너지 발전에 사용하였다. 지역 내 음식과 쓰레기 수거와 관련해서는 오가닉 박스 스킴(Organic box scheme)회사가 참여하였다.</p>
<p>주거 공간에 패시브(passive) 디자인을 최대한 이용하여 난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1995년 당시 건물관련 규정의 10%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 초 단열재, 삼중 유리창, 남향의 유리 온실, 열을 보전할 수 있는 벽체와 바닥, 좋은 햇빛과 PASSIVE STACK 환기장치 그리고 에너지 효율적인 조명과 최신 A등급의 가전제품 등의 시설들을 갖추어 에너지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등  단지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p>
<p>업무공간과 주거공간이 베드제드(Bedzed)단지 안에 함께 공유되고 있었기에 소형 열병합발전소(CHP: Combined Heat &amp; Power)의 발전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주거단지만 있었다면 밤과 낮의 에너지 수요 균형에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p>
<p>베드제드(Bedzed)에 필요한 대부분의 에너지는 바이오매스 소형 열병합 발전소(CHP)가 충당하고 있다. 연료는 목재를 활용한 나무칩을 사용하며, 이 나무칩은 매립지로 보내졌을 버려진 목재를 활용했다.</p>
<p>135kwp의 태양열 전지판은 40대의 작은 전기자동차가 1년에 10,000마일(약 16,100km)을 달릴 수 있을 만큼의 태양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부엌과 화장실에서는 에너지와 물 소비량을 줄일 수 있도록 당시 가장 최신형의 설비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베드제드(Bedzed)에 떨어지는 대부분의 빗물을 모아 화장실 변기에 필요한 물과 관개를 위해 재사용하고 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2.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00 aligncenter" title="b2"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2.jpg" alt="b2" width="464" height="297" /></a></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lt;출처: ZEDfabric – pdf download </span><a href="http://www.zedfactory.com/"><span style="color: #999999;">www.zedfactory.com</span></a><span style="color: #999999;"> website&gt;</span></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img title="b5"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5.jpg" alt="b5" width="500" height="265" /></span></p>
<p>서민 입주자, 핵심고용인(key workers) 그리고 주거 소유자들이 함께 거주하는 베드제드(Bedzed)는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socially inclusive) 지속 가능한 공동체다. </p>
<p style="TEXT-ALIGN: left">주거당 8m²에 해당하는 공간이 운동장과 공공 건물을 포함한 야외 공공장소로 만들어졌다. 공공편의 시설과 HOMEZONE 디자인(보행자 우선으로 디자인 된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은 거주자들이 여는 농산물 시장과 같은 이벤트들과 함께 단지 내 공동체의 실제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농산물 시장에서는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는 트럭이 배달하는 지역 생산품인 계절별 유기농 식품이 거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콘서트나 유기농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모임, 유기농 점심식사 모임, 요가강좌 등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center" title="b3"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3.jpg" alt="b3" width="476" height="314" /><br />
<span style="color: #999999;">&lt;출처: Vale, B. and R. (2000), The New Autonomous House. Thames and Hudson,    London, p. 210.&gt;<br />
</span></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7.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0629" title="b7"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7.jpg" alt="b7" width="476" height="400" /></a></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4.jpg"><img class="size-full wp-image-10602 aligncenter" title="b4"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b4.jpg" alt="b4" width="476" height="304" /></a><span style="color: #999999;"><br />
&lt;출처: From A to ZED  Bill Dunster Architect  ZEDfactory Ltd&gt;</span></p>
<p>베드제드(Bedzed)에는 공용 스포츠센터와 여가 시설이 통합되어 있으며 동시에 복합 상업지구와 주거 단지가 효과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건물의 높이제한에 대한 표준 법정 계획 규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이와 같은 부지의 중복 사용은 잠재적 개발자들에게 기존의 단일적인 부지 사용 접근법보다 더 많은 수익을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따라서 탄소거래가 계획 승인 과정에 통합되면서 발생하는 잠재적 부가수입이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된다.</p>
<p>탄소배출량이 낮거나 제로(zero)인 공동체와 도시들을 세우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들 못지않게 식량 재배, 교통수단 그리고 쓰레기 등과 같은 요소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p>
<p>필자는 빌 던스터(Bill Dunster)과 함께 일하면서 그의 낙관적인 모습과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환경보호의 선구자로서 많은 장애물을 맞닥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제드팩토리(Zedfactory,저탄소 건축업체)를 통해 사람들이 삶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탄소중립 공동체와 도시들을 세우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p>
<p>제드 팩토리는 여러 상을 받은 혁신적인 회사로서 저(low) 에너지,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건물을 디자인을 하는 동시에  식량재배, 운송수단, 수자원과 쓰레기 관리를 포함한 라이프 스타일도 함께 돌아본다 . 베드제드(Bedzed)를 시작으로 제드팩토리(Zedfactory)는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많은 탄소중립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일하고 있다.</p>
<p> </p>
<p><span style="color: #888888;">*위 글은 영문으로 작성된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에는 세계도시라이브러리 자원활동가 박아영님이<br />
수고해 주셨습니다.</span></p>
<p><span style="color: #888888;"><span style="COLOR: #808080">* 본 글은 희망제작소와 월간도시문제와 함께하는 「세계환경도시 기획」의 일환으로 월간도시문제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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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임혜지의 일상이야기]독일 젊은 아빠들의 육아 휴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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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4 Jan 2010 15:11:27 +0000</pubDate>
		<dc:creator>임 혜지</dc:creator>
				<category><![CDATA[세계도시 리포트]]></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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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휴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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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취업주부 vs 전업주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나는 늘 박쥐가 된다. 일이건 공부건 나의 전문 영역을 늘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전업주부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산업역군의 마인드를 가지고 경제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니 취업여성이라 하기도 민망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평생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가지고 나의 일에 열성을 쏟았기 때문에 누가 나를 취미삼아 간판만 걸어놓은 한량 취급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특히 남편이 실수로 유세라도 하는 날에는 국물도 없다. 이런 속물을 데리고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tbody>
<tr>
<td>
<p style="line-height: 20px;">
<div style="margin-top: 30px; font-size: 9pt; border: 1px dashed; padding: 10px;"><strong><span style="color: #00a0e0;">임혜지 님</span></strong>은 독일 뮌헨의 문화재 건물 건축가로, 최근까지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독일 운하에 대해 한겨레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KBS 시사기획 쌈 &#8211; 한반도 대운하 &#8216;국민과 통하라&#8217;(2008.6.17 방송)을 기획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저서로는 &#8216;내개 말을 거는 공간들&#8217;이 있으며, 블로그 빨간치마네 집(<a href="http://city.makehope.org/wp-admin/www.hanamana.de/hana" target="_blank">바로가기</a>)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식 공유에 흔쾌히 응해주신 임혜지 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div>
</td>
</tr>
<p><a href="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lifeklein.jpg"><img class="alignleft size-full wp-image-10606" title="lifeklein" src="http://www.makehopecity.com/wp-content/uploads/2010/01/lifeklein.jpg" alt="lifeklein" width="106" height="106" /></a>취업주부 vs 전업주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나는 늘 박쥐가 된다. 일이건 공부건 나의 전문 영역을 늘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전업주부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산업역군의 마인드를 가지고 경제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니 취업여성이라 하기도 민망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평생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가지고 나의 일에 열성을 쏟았기 때문에 누가 나를 취미삼아 간판만 걸어놓은 한량 취급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특히 남편이 실수로 유세라도 하는 날에는 국물도 없다. 이런 속물을 데리고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p>
<p>나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자식은 아무쪼록 엄마 손에서 커야 하는 거라고 남에게 죄의식을 조장하는 할머니나 동네 아줌마들도 싫어하지만, 모성애는 남존여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족쇄이니 걷어차라고 옆에서 주문을 외는 사람들도 싫어한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냥 자기나 실천하면 되는 거다. 자녀 기르는 방법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으므로 그냥 각자 자기가 처한 상황과 성격에 맞춰서 결정할 일이다. 엄마가 아이를 꼭 끼고 길러서 더 잘 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망치는 경우도 있다. 취업여성이라고 해서 다 남녀평등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여성 고유의 장점을 반납하고 남자 흉내를 내는 여성들은 암만 성공해도 다른 여성들에게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아건 직업이건, 어떤 길을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한 길을 얼마나 잘 가느냐가 중요하다.</p>
<p>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끼고 길러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부부 스스로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후배 부모들에게 우리의 황홀했던 경험을 얘기할라치면 자칫 아이를 부모가 끼고 기르라고 추천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기가 선택한 육아 방식이 가장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 밖에 모르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p>
<p>아들이 열두어 살 때였으니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친구 부부가 두 살짜리 어여쁜 아기를 데리고 놀러왔는데 우리 아들이 참 예뻐하며 잘 데리고 놀았다. 그러다가 공무원인 엄마가 18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게 위해서 아기를 곧 어린이 집에 보낼 거라는 말을 듣고 아들이 경악했다.</p>
<p>“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얜 아직 말을 못하니까 그걸 원하는지 물어볼 수 없잖아?”어떻게 의사 표시를 못하는 아기 본인의 일을 어른들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냐는 뜻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서 설명을 해줬다.</p>
<p>“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맡기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엄마 아빠가 둘 다 직장에 나가는 것이 가족 전체를 위해서 더 나은 경우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덜 사랑하는 건 아니거든. 너는 네가 다르게 컸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을 뿐이야. 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네 부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함께 결정하는 거야. 너 혼자 고집부리거나 강요하면 안 돼.”<br />
아들의 표정은 단호했다.<br />
“그럼 내가 집에서 아기 키울 거야.”</p>
<p>취업맘만 나중에 애들에게서 원망 듣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사랑으로 끼고 길렀다고 해서 아이들의 원망에서 비껴가는 건 아니다. 우리 딸애가 어렸을 때 자기는 엄마 아빠가 자기네들 돌보는 대신 밖에서 일 많이 하고 돈이나 많이 벌어서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저택에서 살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했다. 난 가소로워서 “그러셔?“ 하며 웃고 말았다. 부모에게 불평 불만을 가지는 건 아이들의 직업이니까. 물론 그런 말 듣는 첫 순간에 나는 무심코 억울하긴 했다. 나도 인간이니까.</p>
<p>하지만 우리 딸의 미래의 구상을 들어보면 억울함이 좀 가신다. 딸은 이런 저런 직업을 떠올리면서 바람직한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인지를 꼭 따져 본다. 아직 어린 아이가 벌써 그런 족쇄를 매달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엄마가 네 아이들 잘 봐줄게.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해 봐.“라고 말할라치면 얘는 날 야만인 또는 파렴치한 취급을 한다. “꽥! 내 아이를 왜 엄마가 돌봐? 왜 나의 기쁨을 빼앗으려고 하냐구? 자기는 다 즐겨 놓구서.“ 그런 말을 들으면 난 마음이 좀 놓인다. 사실 나는 집에서 아이들 보면서 욕구불만도 많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서 얘들에게 못되게 군 일도 많았을 텐데 아이들 눈에는 그런 내 상황이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아이들을 맡기고 일한 취업맘이었다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비슷한 정도의 만족감을 보였으리라고 확신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외형이 어땠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p>
<p>한국 사회는 취업맘들의 죄의식을 유난히 부추기는 것 같다. 가족이나 이웃에서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탓일 수도 있고, 경쟁 위주의 교육 현장이 살벌해서 아이들 혼자 해결하기에 버거운 상황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마당에 부모와 자식이 꼭 붙어서 비비고 사는 기쁨을 쓴 나의 책 &#8216;고등어를 금하노라&#8217;가 우리나라 취업맘들의 죄의식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악용될 것을 나는 심히 우려한다. 하지만 난 그 책이 한국의 보편적인 아버지들의 죄의식은 좀 부추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일반적인 엄마들의 모성 점수에 비해서 아버지들의 부성 점수는 좀 낮은 것 같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부성애를 돈 잘 버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시시대부터 이어온 남자들의 근성이니까 조금은 이해해줘야 하지만, 남자들의 이런 착각은 결국 남자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다.</p>
<p>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생일을 절대로 잊지 않고 꼭 챙겨주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생일을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내리사랑이란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많은 아버지들은 그 반대다. 당신은 자식들의 생일은 전혀 모르면서도 행여 자식들이 당신 생일을 잘 챙겨주지 않으면 섭섭해하신다. 이들 아버지들이 경우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젊었을 때 첫 아이인 나를 안고 어르다가 목사님이 오시니까 갑자기 나를 팽개치듯 내려놓으셨다는 일화, 해외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가 외국에서 자식들에게 학교로 엽서를 보냈는데 그만 내 동생의 학년을 몰라서 틀리게 적었다는 일화가 우리 집안에선 자랑스럽고 애교스럽게 전해내려온다. 우리 아버지는 자기 핏줄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을 표현할 자유를 사회 통념에 의해 박탈당하고, 자식의 성장 과정에 무심한 것이 대외적으로 성공한 대범한 아버지로 용서되는 시대를 주류로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p>
<p>그 세대의 아버지들은 평생 죽을동 살동 일하고 돈 벌어서 가족을 부양했지만 가정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여 결국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다. 냉정한 후대의 시선으로 보건대, 가장 소중한 부성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줄도 모르고 밖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남성의 특권이라 여겨서 맘껏 인생을 즐긴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그렇게 무지했다. 그런 사회의 분위기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소수의 남성들을 핍박하고 윽박질러 그들이 가정에 헌신하는 것을 막았다.</p>
<p>노년의 아버지들은 억울하다.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품었던 섭섭한 감정은 어머니의 다른 헌신적인 행위로 상쇄될 기회가 많지만, 아버지의 경우엔 접촉이 별로 없으니 쌓였던 억하심정을 풀 기회 또한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식들은 그들이 관여할 분야가 아닌, 부부 사이의 은밀한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에서까지 어머니를 대변해서 아버지를 원망한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돈만 대준 사람, 즉 어머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식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가능해도 사람의 감정은 아버지가 버는 돈 이콜 사랑이라고 해석하지 못한다.</p>
<p>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독일이라고 해서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다. 요즘 독일의 젊은이들은 구세대 아버지들의 무지와 억울함을 대물림할 의향이 없다. 우리 주위에만 해도 부인과 육아 휴직을 나눠 쓰는 남성이 서넛이나 되고, 잘 나가는 정치가가 승산이 높은 당수 경선을 포기하고 1년의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일도 있다. 독일에선 최고 3년의 육아 휴직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육아를 위해 휴직한 사람에게는 12개월 동안 기존 월급의 67%를 지급하는데, 양쪽 부부가 동시에 또는 번갈아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2개월분을 더 지급한다. 아버지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인데 아직은 고학력층에서 주로 수용되고 있는 현실이다.</p>
<p>독일인들이 양성평등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정책을 만들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독일은 어머니를 가정에 묶어두는 전통이 있는 나라이다. 자녀를 일곱이나 둔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이 도입한 이 정책은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독일의 저출산율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다. 즉 남녀가 평등하게 육아의 짐을 지는 사회 안에서만 젊은이들이 자식을 낳아 기를 엄두를 낸다는 것을 정치권에서 알아챈 것이다. 육아가 남녀 공동의 과제로 간주되어야만 세상의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도 육아로 인해 손해보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p>
<p>그래야 사원을 위하여 회사 내에 어린이 집을 운영하는 기업도 생겨날 것이고, 남녀 막론하고 장기간의 육아 휴직이 당당하게 활성화될 것이며, 양질 저가의 어린이 시설이 양성될 것이고, 믿고 맡길 만한 공고육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 사회의 수혜자는 이중고를 벗은 여성, 가정에서 제 자리를 확보한 남성, 그리고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유아시절을 보내고 공교육에 의해 평등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될 것이다.</p>
<p>그러다 보면 고달픈 현실을 반영하고 암울한 미래를 상징하는 저출산율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자식 농사는 손해보는 사업임에 틀림없지만 약간의 희망만 보여 주면 누구나 다 속아넘어가는 아이템인 걸.</p>
<p>(레몬트리 11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실렸습니다.)</tbody>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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