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Archive for November 2008
기획주제, 도시재생, 세계도시 리포트, 유럽 »
화력발전소는 문화발전소로 맥주공장은 문화양조장으로
[생생한 문화공간 탐방 지역이 살아난다]2.영국·독일엔 어떤 사례 있나-① 폐공장을 문화시설로
경남도민일보 2007년 11월 14일 (수) 글·사진/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흉물이 된 이 지역을 싹 밀어버리자는 새로운 건설 계획이 수없이 제시되기도 했다.”
테이트 모던의 미술관 운영 담당 ‘아드리안 하드위크’ 씨와 쿨투어 브라우이의 ‘죄렌 비르케’ 씨가 공통으로 한 말이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런던에, 쿨투어 브라우이는 독일 베를린에 있다.
이 두 곳은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테이트 모던에는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이, 쿨투어 브라우이에는 100만 명의 지역 주민이 찾고 있었다.
두 곳 모두 외관이 화려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원래부터 문화예술 공간으로 기획된 곳도 아니었다. 이들은 ‘폐공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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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City를 찾아서
‘세계적 환경모델 도시’ 일본 기타큐슈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요즘 대한민국과 독도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있어 가뜩이나 역사적으로 안 좋은 인식이 더욱 나빠진 느낌입니다. 도쿄에서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해창님은 언젠가 두 나라가 사이좋은 이웃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꿈꾸는 생태되로 일본의 세계적 환경모델도시인 기타큐슈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잿빛도시에 일어난 환경 기적,기타큐슈시를 세계적인 녹색으로
일본 남쪽 규슈지역 최북단에 위치한 일본 4대공업지대의 하나인 기타큐슈시는 도시발전과 환경보존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세계적인 환경모델도시이다. 그것은 지난 1960년대 이래 ‘잿빛도시’의 오명을 갖고 있었던 세계적인 공해도시가 1990년대 들어서는 세계적인 녹색도시로 변모하는 `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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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이래 강남은 이 나라의 고질병 중의 하나인 ‘땅 투기’의 상징이었다. ‘복부인’부터 ‘떴다방’에 이르기까지 강남 개발의 이면에는 언제나 전문 투기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눈 깜빡할 시간에 엄청난 돈을 거머쥔 벼락부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곤 했다. 그러니 이런 강남의 땅 값이며 집 값이 또 다시 들썩거린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게다. 2001년이 저물어 갈 무렵부터 강남의 아파트 값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밀도 아파트의 재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를 이용해서 투기꾼들이 작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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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플랜은 40~50년 뒤의 비전을 제시하는 장기 계획으로 1971년에 최초로 수립되었고, 10년 마다 재정비된다. 대규모 지역에 대한 토지이용 및 교통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 및 정책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법정 계획인 마스터플랜보다 인구 및 맥락 변화에 융통성이 있고 성장 추이에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장 최근에 재정비된 2001년의 컨셉 플랜은 ‘21세기 세계적인 수준의 도시Toward A Thriving World Class City in the 21st Century’를 목표로 삼아 주택, 여가, 업무 그리고 역사적 정체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의 가장 핵심 부분은 충분한 녹지 공간 속에서 편안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국제 업무를 위한 융통성 있는 공간 구획 zoning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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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회는 청빈을 내세우며 로마교황청의 사치와 부패를 비난했다. 당시 프란체스코 수도회 총회장 미카엘과 그의 지지자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재산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청빈을 이론적으로 옹호하였다. 미카엘은 교황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대놓고 교황에게 대항하다 아비뇽에 유폐되었다. 그러다 아비뇽을 몰래 탈출해 도피를 하게 된 것이다.
교황 요한 22세는 프란체스코회에 대한 이단 심문을 하기 위해 그들을 아비뇽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바이에른의 독일 황제 루트비히에게로 갔다. 그들은 막 로마에서 돌아오던 황제를 피사에서 만났다. 황제는 로마에서 아비뇽에 있는 황제 대신 새로운 교황을 세우고, 그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의 왕관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