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순례]국립 푸슈킨 미술관

푸슈킨 미술관 전경
국립 푸슈킨 미술관(State Pushkin Museum of Fine Arts)은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국립 서양미술관이다. 푸슈킨 미술관의 머릿돌이 놓인 것은 1898년 8월 17일의 일이다. 이 미술관의 애초 창립 목적은 미술학도와 인문학도들을 교육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초기의 주요 수장품은 고대와 중세의 조각 및 건축 구조물의 석고 혹은 주물 복제품들이었다. 이렇게 고대 조각의 복제품 위주로 뿌리를 내린 푸슈킨 미술관이 질적 변화의 계기를 얻게 된 것은 1923년 서유럽의 고전미술을 다루는 모스크바 중앙미술관으로 거듭나면서다.
현재 푸슈킨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은 무려 50만여 점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숫자는 회화와 조각 외에 판화, 드로잉, 장식미술품, 이집트 등 고고학 유물, 화폐, 사진 등을 포함한 것으로, 비록 전체 숫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서양 대가들의 작품을 다량 소유한 회화 부문이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푸슈킨 미술관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명화로는 보티첼리의 <수태고지>, 크라나흐의 <성모자>, 렘브란트의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 에스더>, 푸생의 <리날도와 아르미다>,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다비드의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카퓌신 거리>, 르누아르의 <누드>, 드가의 <푸른 무희>, 반 고흐의 <감옥 안뜰>,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보나르의 <세면대 위의 거울>, 고갱의 <테 아리 바히네(왕의 부인)>, 루소의 <말을 공격하는 재규어>, 마티스의 <금붕어>, 피카소의 <공 위의 소녀>, 칸딘스키의 <즉흥 20> 등이 꼽힌다.
부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1731~34(?), 캔버스에 유채, 90×74cm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가장 유명한 푸슈킨의 소장품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부셰는 검박한 정물화의 대가 샤르댕이 그와 동세대 화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미술을 추구했다. 로코코 회화의 문을 연 그의 선배 와토가 페트 갈랑트(우아한 연회)의 화가로 불렸다면, 그는 미톨로지 갈랑트(우아한 신화)의 화가로 불렸다. 그의 캔버스에 내려앉은 신화마다 장엄하고 스펙터클한 맛은 사라지고 에로틱하고 감상적인 향기만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의 신화는 오로지 누드와 사랑, 에로티시즘을 위한 연인들의 무대일 따름이었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역시 미톨로지 갈랑트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헤라클레스는 천지가 다 아는 천하장사. 옴팔레는 리디아의 여왕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의 노예로 팔려간 것은 광기로 인해 자신의 친구 이피투스를 죽인 데 대한 벌이었다. 천하장사를 노예로 둔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에게 여성의 옷을 입히고 그녀의 발치에서 실을 잣게 했으며, 자신은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을 입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헤라클레스는 주인 옴팔레를 위해 원숭이를 닮은 쌍둥이 도적 케르코페스를 혼내주고 나라에 재앙을 일으키는 뱀을 물리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마침내 이런 헤라클레스에게 반한 옴팔레는 자신의 노예와 사랑을 나누게 됐다. 그림에는 그 사랑의 장면이 무척이나 노골적이면서도 로맨틱하게 표출돼 있다. 헤라클레스의 허벅지 위에 과감하게 다리를 올려놓은 옴팔레나 그런 옴팔레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헤라클레스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매우 선정적이다. 시트를 비롯해 흘러넘치는 천들 모두 이들의 농익은 사랑을 나타내는 수단이 돼 버렸다. 두 남녀가 얼마나 서로에게 몰입해 있는 지는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과 실 잣는 도구를 큐피드들이 함부로 가지고 노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랑은 언제나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실내에 담긴 일상의 이미지를 친근한 시선과 친밀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화가들을 앵티미스트(Intimiste)라고 부른다. 목욕하는 아내의 모습을 즐겨 그린 피에르 보나르는 대표적인 앵티미스트다. 그의 아내 마르트는 바깥나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 집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목욕을 하는 목욕광이었다. 지독히도 아내를 사랑한 보나르는 그런 아내를 즐겨 화폭에 담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앵티미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보나르, 세면대 위의 거울, 1908, 캔버스에 유채, 120×97cm
푸슈킨의 소장품 <세면대 위의 거울>도 앵티미스트로서 보나르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다. 거실 한 쪽에 붙어 있는 세면대 위에는 도자기로 만든 대야와 물병, 세면도구가 놓여 있다. 그 위 벽에 걸린 거울에는 맞은편 풍경이 그대로 반사된다. 한 여자가 소파 같은 곳에 앉아 차를 들고 있고 다른 여자는 목욕을 한 뒤 몸을 말리고 있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실내의 거울로 포착해 그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돌아보면 사실 소소하고 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 경우가 많다. 그 순간에는 아무 것도 아닌 양 지나치지만 소소한 것들이 쌓여 삶은 그 진정한 의미를 이룬다. 이렇게 아내의 일상을 무시로 그렸음에도 보나르는 마르트가 죽었을 때 더 이상 그녀의 일상을 그릴 수 없는 데 대해 무한히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녀의 침실 문을 굳게 잠그고 다시는 열지 않았다고 하니 실로 아내의 실내가 그에게 의미하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티스는 전통적인 앵티미스트는 아니지만, 인상적인 실내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실내 풍경에서도 우리는 일상의 살가운 정서를 푸근한 시선으로 만나게 된다. <금붕어>는 금붕어가 담긴 어항을 그린 그림이다. 무엇보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선명하고 순수한 색채와 다채로운 구성이 눈길을 끈다. 볼수록 마음이 맑아지는 그림이다.

마티스, 금붕어. 1912, 캔버스에 유채, 140×98cm
마티스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전통적인 빛과 어둠의 표현, 그리고 그 표현에 따른 입체적인 모델링을 모두 포기했다. 비교적 분명한 윤곽선으로 형태를 잡고 그 형태 안에 서로 다른 색을 집어넣어 그 차이로 대상을 설명한다. 어린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세밀히 들여다보아도 빛이 어디서 오는지, 공간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원근법상으로도 역원근법의 형태를 취해 가까이 있는 것이 작거나 좁은 인상을 주는 반면 뒤에 있는 것이 오히려 넓게 퍼져나가는 느낌을 준다. 그에 따라 관객은 사진이나 사실적인 회화를 보는 방식에서 탈피해 어린아이의 그림을 보듯 대상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자잘한 사물 하나하나에 그만큼 정성을 들여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마티스가 우리에게 되찾아준 그림을 보는 방식이다. 작은 대상이라도 모든 대상을 소중히 여기고 애정을 갖고 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마티스는 진지하고 친근한 앵티미스트가 된다.
루소는 소박한 붓질로 열대의 정열을 그려 유명해진 화가다. 루소는 오랫동안 세관원 일을 해 르 두아니에(세관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요화가로서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으나 제대로 미술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여건도 좋지 않았던 만큼 화단의 인정을 받고 부와 명성을 얻기에는 애초부터 기대난망이었다. 그럼에도 루소는 꾸준히 작업에 몰두해 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의 눈길을 사로잡는 등 사후에 대가로 인정받을 재능을 선보였다.

루소, 말을 공격하는 재규어, 1910, 캔버스에 유채, 90×116cm
그림을 보자. 흰 말의 우아한 모습만 보아서는 재규어가 말을 공격한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재규어의 자세는 분명 사냥하는 자세다. 이렇게 말이 직면한 처절한 운명과는 관계없이 열대의 식물들은 그저 아름답고 유려한 장식으로 온 화면을 물들이고 있다. 이 열대의 식물 이미지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어 오늘날 그는 가장 열대다운 열대 풍경을 그린 화가로 인식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는 한 번도 열대지방에 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친구 들로네의 어머니가 인도에서 지냈던 경험을 회상하며 열대 풍경을 그려줄 것을 부탁하자 식물원과 동물원에 가서 관찰한 것을 토대로 열대를 그린 것이 이 모든 열대 풍경의 시초가 됐다. 그렇게 상상에 의존해 그린 그의 열대 풍경은 어쨌든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가장 전형적인 열대 풍경으로 인기를 끌게 됐다. 하지만 사실을 놓고 따지면, 그의 그림에서 어느 하나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림의 배경이 아프리카인지 인도인지 기타 다른 지역인지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재규어만 해도 아메리카 대륙이 서식지이고 저런 열대림 속에 야생의 흰 말이 있다는 것도 매우 낯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정글은 울창하고 신비롭다. 무언가 우리가 모르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세상 같다. 그 신비, 그 수수께끼가 바로 우리가 열대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다. 루소는 그걸 그렸다. 그 또한 우리처럼 그 신비의 세계에 가 보고 싶었고 나아가 그곳으로 망명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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